
코로나19 슈퍼 전파자의 진원지가 신천지에서 정통 교회로 옮겨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는 모습이지만 일부 보수 교회들이 ‘종교탄압’ 프레임을 들이대며 반발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한시적 종교집회 금지’를 언급하고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의원(부산진구갑)이 언급한 ‘종교집회 전면금지 (대통령) 긴급명령’을 요청한 것에 반발하면서 행정명령에는 따르지 않겠다는 교단 성명과 설교가 난무하는 중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 김종준(꽃동산교회) 총회장은 12일 성명을 통해 “이는 종교의 본질과 자유를 훼손하고 종교단체들을 탄압하는 처사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바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김태영(백양로교회) 총회장은 15일 예배 설교에서 “우리 교단 안에서도 여러 목사님들이 지역에서 ‘예배 드리면 시장이나 군수로부터 300만 원 벌금 맞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며 ”‘300만 원 벌금 내라고 하면 3천만 원 벌금 낼 정도로 예배를 드리라’고 했다. (정부가 예배 중지를 강제한다면) 협조할 필요도 없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 왜 정부가 환경적 문제를 신앙적 문제로까지 연결해서 가만히 있는 교인들을 순교자적인 자세로 만들려고 하는가"라고 질타했다.
장자교단을 자처하는 두 장로교단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종교탄압’ 주장에 힘을 싣고 있는 것이다.
이뿐인가. 부산 영락교회 윤성진 목사는 15일 예배 설교에서 “(이인영) 여당 원내대표가 종교를 재편하겠다고 했다”며 “종교라고 해봐야 기독교다. 기독교를 손보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영춘(부산진구갑 ) 의원이 코로나 때문에 국가가 예배를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면서 “대통령 명령권 긴급조치 발권 시켜서 해야 한다고 했다”며 말했다. 윤 목사는 또 “정치적으로 교회 문을 닫게 만든다. 예배 못 드리게 만든다. 이게 정치 세력이 하는 일들이다. 이것이 대환란의 암시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소름이 끼친다"고 성토했다.
여수은파교회 고요셉 목사는 14일 청년부 예배에서 “예언컨대, 이재명지사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버리신다”며 “이때를 이용해 교회의 정체성을 흩으려는 것”이라고 설교했다.
목사들의 논리는 이러하다. 종교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인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9조(감염병의 예방 조치)’ 로도 종교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배에 대한 목사들의 사모함을 감히 평신도에 불과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무리 이해를 하려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그 어떤 정치인도 지도자도 사실상 ‘예배’를 드리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모이는 회중예배가 위험할 수 있으니,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모이는 예배를 당분간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아무리 요청을 해도 듣지 않는 교회들이 있고, 결국 교회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어 우려되니 조금은 더 강제해서라도 교회와 사회를 보호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목사들의 외침은 마치 위험한 장난감을 손에서 빼앗긴 어린아이의 앙탈 같기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미성숙한 청소년의 반항 같기도 하다. 혹, 과대망상에 빠진 돈키호테 같기도 하다.
우리는 집에서든 골방에서든 우리가 처한 모든 현장에서 예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다. 그 누구도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를 끊겠다고 한 적이 없다. 막겠다고 한 적이 없다. 누구도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겠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떠올려보면 나는 어린시절부터 교회에서 ‘삶이 예배가 되게 하라’고 배워왔다. 코로나19의 공포감이 전 세계를 뒤덮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삶의 예배란 무엇일가. 고통받는 이웃과 가진 것을 나누고, 공포에 휩싸인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삶일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세상에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는 전하지 못할지언정 “왜 교회만 갖고 그러냐”고 순교할 태세로 나선다. 도리어 “왜 교회만 그러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목사들의 목청이 높아질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부끄러움은 왜 상식을 지닌 교인의 몫이어야 하는가. 세상을 위한 십자가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오늘도 감내할 부끄러움의 무게에 고개를 떨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