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ID 이용 백신맞은 국민일보 취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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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ID 이용 백신맞은 국민일보 취재 논란
  • 권지연 기자
  • 승인 2021.04.21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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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자랑스럽게 기사화, 시민들 "취재 윤리 위반" 공분
(출처=국민일보)

[평화나무 권지연 기자]

‘미국 출장 중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는 제목의 국민일보 19일자 기사가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클리앙과 딴지 등의 커뮤니티에는 “백신 개발하고 전 세계와 나누겠다더니 이제 와서 자국민 3차 접종할 때까지 해외로 수출 금지하는 미국이 그렇게 좋으면 미국 가서 미국 신문 기자 해라”, “지금 미국에 하루에 코로나 걸리는 숫자는 왜 안 적나? 현재도 하루 7만여명이 코로나 걸리고 있다. 백신을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역과 거리 두기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백신은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는 사실을 적어야지. 좀 더 취재해서 국민에게 알려주기 바란다”, “미국은 resident(거주자) 조건이 있죠. 이건 미국인도 실거주하지 않으면 안 나옵니다. 지금 불법을 자랑으로 기사를 올렸네요” 등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심지어 20일 커뮤니티 클리앙에서 한 네티즌은 “미국의 공공의료 안전에 큰 해악이 된다고 판단하여 CDC와 미국 보건부에 의료 사기 및 한국의 유력 일간지 국민일보의 기자라는 신분을 이용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대규모 의료 사기 조장으로 신고했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논란의 주인공은 국민일보 백상현 기자다. 해당 기사에는 백 기자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출장 기간 중 외국 국적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예약을 통해 미국 LA다운타운 랄프스 마트 내 약국에 설치된 무료 백신 접종소에서 쉽게 화이자 백신을 접종했다는 체험담이 담겨 있다. 

백 기자는 기사에서 미국의 백신 접종에 대해 “미국은 1억3000만여명이 백신을 1회 이상 접종했으며, 조만간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며, “다수의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하는 위중한 상황에서도 개인의 자유, 종교의 자유, 사생활을 최우선시했던 것은 자유 쟁취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백신 확보라는 자신감에서 나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찬양했다. 반면 “통제중심의 ‘K방역’은 뒤집어 말하면 정부의 뾰족한 해법이 없으니 국민이 더욱 희생해야 한다는 뜻 아니었을까”라고 비판했다. 

백 기자는 최근 세계한인기독교방송협회(WCBA, 이영훈 이사장) 제25차 대회 취재를 위해 미국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보인다. 백 기자가 최근 미국을 방문해 작성한 기사는 ‘미국 출장 중 화이자 백신 맞았다’는 체험기 외에도 15일 작성된 ‘복음 실은 방송 세계로 전파… ‘제자 삼으라’ 지상명령 앞장’ 기사와, 돈 반커 전 미국 워싱턴주 하원의원과 이영훈 목사(여의도 순복음교회)의 만남을 조명한 “한·미 기독인, 세계 평화·종교 자유 위해 기도의 힘 모아야”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화이자 백신 (출처=연합뉴스)

 

국민일보 기자, 불법으로 백신 맞았나

미국 교민들을 통해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백 기자처럼 백신을 접종하는 일은 실제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심지어 LA에 거주하지 않으면서도 한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백신을 맞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다른 주보다 LA카운티의 경우 신분증 확인 등이 까다롭지 않고 접종 현장 인력이 임시직인 경우가 많아 ID 체크 등을 세밀히 할 여력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 또 한편으로는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불법체류자라도 백신을 접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퓨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 내 외국 출생 이민자 숫자는 총4480만명으로 미국 전체인구의 13.7%를 차지하며, 이중 약 4분의 1은 불법 체류 신분이다. 

그렇다고 백신 접종 기준이 없는 건 아니다. LA카운티 코로나19 백신 접종 안내문에 따르면 “시민권은 필요하지 않지만, 16세 이상의 LA 카운티에서 거주하거나 일하는 시민에게 COVID-19 백신을 맞을 자격이 주어진다. 또 운전면허증이나 캘리포니아 신분증 혹은 도서 대출 카드, 공과금 정산서, 유권자 등록 확인서 등을 통해 LA카운티에 거주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LA 카운티에서 백신을 접종하는 데 시민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카운티 내에 거주하거나 근무한다는 점만 증명하시면 됩니다"라고 적혀 있다. 

단, 적발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한 교민은 “이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 이름으로 10분 간격으로 예약하는 사람도 봤다”며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아 심지어 버려지는 백신도 많다”고 설명했다. 또 “예약자가 본인인지를 확인하긴 하지만 합법인지 불법인지는 현장에서 확인할 방법도, 이를 적발할 방법도 없다”고 했다. 

종합해 보면, 현지 장기 체류자도 아닌 백상현 기자가 출장 중에, 그것도 타인의 ID카드를 사용해 백신을 접종했다면, 시스템 미비와 적발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불법을 자행해 놓고 자랑스럽게 기사화한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불법 자행하면서까지 체험해 기사화할 가치는?

백상현 기자의 기사에서 살펴봐야 할 또 다른 쟁점은 해당 기사가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체험하고 기사화할 가치가 있었느냐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쪽방촌이나 노동현장 등을 기자가 직접 체험한 후 기사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는 체험 자체가 사회적 의미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타인의 ID를 이용해 백신을 맞았다는 것 자체가 한국인과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느냐는 생각해 볼 지점이다. 

백신을 확보했다고 해서 코로나19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미국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여전히 하루평균 7만명에 달한다. 미국 전체인구로 대입하면, 약 5천명 중 1명꼴로 코로나19에 감염된 셈이다. 게다가 변이 바이러스는 충분한 백신에도 미국을 코로나19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뿐 아니라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최근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8주 연속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며 경고했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지난주 전세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520만명을 넘어 지난해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주간 단위로 최대를 기록했다면서 사망자 수 역시 5주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면서 긴장감이 풀린 데다 백신 접종에 대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한 것이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인 펜데믹 상황을 종식 시키기 위해서는 백신 특허권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미국 내에서도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데 백상현 기자가 미국의 백신 접종 체험기를 통해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K방역이 통제중심이었다고 비판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는 오히려 방역체계를 흔드는 부정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민동기 미디어 평론가는 “한국 기자들은 미국이나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은 이스라엘의 경우를 롤 모델로 보도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러나 백신을 확보했거나 한번 백신을 맞았다고 해서 코로나19 상황이 종식된 것도, 코로나19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백신의 효용성이 길어야 5-6개월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백신을 주기적으로 맞아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고, 아직 누구도 단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사를 쓰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국중심주의로 가는 백신 공급을 비판하고 백신 특허권 문제 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할 주변국의 나라 기자가 이런 기사를 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게다가 이런 백신 접종 체험기는 취재 윤리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국민일보 종교국 부장은 ‘해당 기사가 문제가 없다고 판단돼 데스크를 통과한 것이냐’라고 묻는 질문에 “그렇다. ID가 있어야 백신을 맞는 건 아니고 우편물 수령을 위해 필요할 뿐이라고 들었다. 본인한테 한 번 물어보라”고 답했다. 

백상현 기자와는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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