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무 권지연 기자]
“우리 아이들을 반칙과 특권, 불의가 횡횡하는 대한민국에 살게 할 수 없습니다. 조국 파면과 문재인 대통령의 폭정을 막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 싸워야 합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을 규탄하는 순회 장외투쟁에 나서면서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지난달 10일 이같이 연설했다. 이후로도 조 전 장관에 대한 황 대표의 강도 높은 비판은 계속됐다. 조 전 장관은 불법과 탈법으로 황태자 교육을 했다는 것이다. 이달 3일 광화문 광장 집회에서는 “이처럼 문제 있는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을 강행한 문재인 대통령은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며 칼날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준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녀 입시문제와 관련해 황 대표의 발언은 대중의 지지를 크게 얻지 못하는 모습이다. 황 대표 스스로 반칙과 특권으로 황태자 교육을 시킨 부모라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올해 국정감사 시작부터 황 대표의 자녀 입시 특혜의혹이 도마 위에 올랐다.
황교안 아들·딸이 받은 장관상은 무엇?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일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행정안전부 국정감사에서 황 대표의 두 자녀가 각각 중·고교생이던 지난 2001년, ‘장애인 먼저’ 우수실천단체 시상식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은 것에 대해 특혜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당시 보건복지부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제6회 ‘장애인 먼저’ 우수실천단체 시상식 명단에는 황 대표의 아들·딸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와 있다. 두 사람은 얼마나 사회에 귀감이 되는 일을 했길래, 중·고등학교 시절에 보건복지부 장관상까지 받았다는 것일까.
보건복지부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당시 황 대표의 두 자녀가 받은 장관상은 장애인먼저실천중앙협의회가 주최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하는 행사로 2001년 12월 10일 오전 63빌딩 스모스홀에서 시상식을 열었다. 복지부 보도자료에는 UN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날을 기념하고 ‘장애인 먼저’ 실천운동 캠페인을 널리 확대하기 위해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한 단체 중 우수 단체를 선정했다고 기재돼 있다. 수상은 단체와 개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대상과 적십자상, 우수실천단체상은 전부 단체가 받았고 보건복지부 장관상은 개인 5명이 수상했다. 그중 2명이 황 대표의 자녀들이다. 장애우와 함께하는 청소년 모임을 만들었다는 것이 장관상 수상의 주된 이유였다. 황교안 대표의 아들과 딸이 만들었다는 사이트 ‘장애우와 함께하는 청소년 모임(장함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청소년을 연결해주는 인터넷 사이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사이트를 만든 취지는 매우 바람직해 보인다. 그것도 청소년들의 아이디어라면 칭찬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사이트 운영 기간은 장관상을 수상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남매는 2001년 4월 사이트를 개설해 7월 정식 오픈했고, 그해 11월에 장관상 수상 여부가 결정됐다. 사이트를 운영한 지 3개월도 채 안 돼 중·고등학생 청소년이 장관상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의원은 “인터넷에 남은 사이트 기록을 보니 남매를 제외한 첫 회원의 가입일, 사실상 실질적인 (사이트) 운영 개시일로 볼 수 있는 날은 9월 7일”이라며 “상의 근거가 되는 여러 가지 사유들을 담아 공식적으로 공적 조서를 작성한 것은 11월 13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중·고등학생의 수상도 매우 이례적이다. 그간 장애인먼저실천상에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한 인물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오랫동안 장애인 활동에 헌신한 인물들이 꼽혔다. 보건복지부상은 2000년에는 대한빛고을 자원봉사회 부회장과 중앙컴퓨터아트학원 대표, 한국도로공사 영업처 과장 3명에게 돌아갔고 2003년에는 작업치료사, 한국도로공사 직원, 삼성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 직원 총 3명이 받았다. 2001년에는 이례적으로 5명인 데다 중·고등학생이 포함된 것이다. 그것도 서울고검인 아버지를 둔 남매가 나란히.
‘부모 찬스’ 아니면 불가능한 정성 스펙
사이트가 폐쇄된 지금 두 사람이 당시 얼마나 활동을 활발히 했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남매의 ‘장함모’ 사이트 운영 경험은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정성 스펙(수치화할 수 없는 차별적인 스펙)’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황 대표의 딸은 2004년 ‘장함모’ 사이트에 사람들이 올린 글을 엮어 ‘우리 친구 할까요’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또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은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한 황 대표의 딸이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통해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2004년 6월 29일 법률신문 <서울고검 황교안 검서의 장애우 사랑>기사에는 “‘장함모’에는 여섯 살 꼬마에서부터 40대 중년까지, 장애인 60여명에 비장애인 5백6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신체적 장애의 벽을 넘어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황 대표가 든든한 지원군이란 사실이다. 기사는 “황 검사는 이 사이트 개설부터 정기모임에 드는 비용 일체를 대주는 것은 물론이고 매일 올라오는 음란물을 삭제해주고 매주 토요일 밤 10시에는 장애우와 나누는 정모 채팅에 참여하는 등 남매의 사이트 운영을 지원해 주는 든든한 후원자”라고 밝히고 있다. 황 대표는 장함모 활동을 통해 장관상만 받았던 것이 아니다. 고3이었던 2004년, 전국중등교장협의회와 푸르덴셜 사회공헌재단이 공동 주최한 제6회 전국 중·고생 자원봉사대회 금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평은 다음과 같았다.
“남다른 인터넷 정보시스템을 이용하여 장함모가 굳건히 발전해 나가도록 많은 정성과 노력을 경주하였다. 눈에 띄는 테마 봉사로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될 것이다. 특히 문집을 발간하고 1:1 친구 맺기 행사로 장애인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지속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을 칭찬한다.”
그러나 2004년 ‘장함모’ ㅛ이트는 활성화하지 못했고, 황 대표의 딸이 대학에 진학한 후 2005년 9월께 완전히 폐쇄됐다.
‘장함모’ 사이트 대리 운영 의혹
‘장함모’ 사이트를 제3의 인물이 대리 설립·운영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장함모 사이트의 실질적 운영자로 꼽히는 사람은 황 대표 배우자의 후배 장 모 씨다. 장 씨는 사이트가 폐쇄되기 직전인 2005년 9월 3일까지 장애 관련 자료를 약 900건이나 올렸다. 그런데 현재 강남의 한 심리상담센터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는 장 씨는 ‘연세대 대학원 심리상담 전공’, 현재 ‘나사렛대 대우교수’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남매의 어머니이자 황 대표의 아내인 최지영 씨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목회심리상담을 전공했고, 현재 나사렛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재정 의원은 국감 현장에서 “두 사람은 지도교수도 같고, 2001년 이래 선후배 관계를 맺으면서 놀라우리만큼 활동이 겹친다”며 “두 사람의 관계가 사실상 선후배 관계가 아닌, 상하 협력 관계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황 대표의 아들 황 씨 이름으로 작성된 글의 이메일 주소와 황 대표가 현재 사용하는 이메일 주소가 같은 점을 근거로 “장함모 사이트의 글을 ‘아빠가 대신 (글을) 써줬나’라는 생각도 해본다”고 말했다.
황 대표의 자녀가 장애인 봉사활동과는 무관한 사항을 공적 조서에 적시한 점도 의문을 갖게 하는 지점이다. 이 의원에 따르면 황 대표의 두 자녀는 시기가 특정돼 있지 않은 ‘대검찰청 도서실 봉사활동’ 이력을 보건복지부 장관상 수상을 위한 공적 조서에 적시했다. 뿐만아니라 장소와 횟수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은 헌혈 기록도 조서에 올렸다. 장애우 관련 미담을 소개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등 활동을 했다고 거론한 부분은 언론 보도 내용을 장함모 사이트에 그대로 게시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 의원은 “(공적 조서에)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내용이 들어갔다”며 “특히 대검찰청 도서실 봉사활동은 아빠 찬스가 아닌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행안위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거칠게 항의했다. 윤재옥 의원은 “행안부 장관이 상을 준 것도 아니지 않느냐. 행안부 장관을 상대로 할 얘기는 아니다”라며 “국감장에서 이러는 건 서로 싸우자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날을 세웠다.
황 대표 아들 자랑으로 ‘자승자박’
황 대표 역시 자녀의 장관상 수상이 입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의혹에 “자신의 영향을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자녀 입시 특혜의혹과 논란은 황 대표 스스로 자처했다.
황 대표는 지난 6월 20일 숙명여대 특강에서 "내가 아는 한 청년은 3점도 안 되는 학점에 토익 800점 정도로 취업을 했다"며 “스펙은 부족하지만 고등학교 영자 신문반 편집장, 동생과 인터넷으로 장애인-비장애인 친구 맺기 활동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아 졸업 후 15개 회사에 서류를 내 5곳에서 최종 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청년이 바로 우리 아들"이라고 밝혔다. 황 대표는 "스펙도 중요하지만, 나만의 장점을 만들어가는 것이 취업할 때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황 대표의 발언에 정치권은 술렁였고 국민 여론은 싸늘했다. 현실 인식이 떨어지는 그의 발언은 청년들에게 공허함만 안겨주었다.
황 대표의 아들은 KT에 입사했다. 일반적으로 학점이 3점 미만에 토익 800점으로는 입사가 쉽지 않다. 평균보다 미달하는 점수로 대기업에 입사한 황 대표의 아들에게 가장 좋은 스펙은 ‘아버지’였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논란이 거세지자 황 대표는 아들의 '정량스펙을'을 수정했다.
본래 학점은 3.25, 토익점수 925라는 것이다. 황 대표는 스펙을 높인 게 아니라 낮춰 발언한 것이라 문제 되지 않는다는 말도 황당한 주장도 했다. 황 대표 자녀들의 인생에서 정말 아버지 찬스는 없었을까? 이제 제1야당 대표 자녀의 입시·취업 특혜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조국 전 장관에게 했던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명명백백히 밝혀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