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무늬만 프리랜서’ 이제는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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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무늬만 프리랜서’ 이제는 바꾸자”
  • 김준수 기자
  • 승인 2021.04.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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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언론연합 “지상파 3사,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방송사·외주 제작사, 방송·미디어 노동자 권리 존중받도록 당장 행동 나서야”
지난 3월 19일 상암 MBC 앞 광장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이 진행한 ‘MBC 방송작가 부당해고 구제 및 근로자성 인정 촉구 기자회견’. (사진=평화나무)
지난 3월 19일 상암 MBC 앞 광장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이 진행한 ‘MBC 방송작가 부당해고 구제 및 근로자성 인정 촉구 기자회견’. (사진=평화나무)

[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지난 3월 22일 노동절을 앞두고 기념비적인 판정이 나왔다. ‘무늬만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오랜 시간 동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방송작가들이 최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지난 27일부터는 KBS·MBC·SBS 지상파 방송 3사의 보도·시사교양 분야 방송작가에 대한 근로감독이 실시됐다.

이외에도 지난해 12월 방송통신위원회는 향후 방송사 재허가 심사나 방송평가에서 ‘비정규직 고용실태’를 필수적으로 평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 26일에는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당한 고 이재학 PD가 몸담았던 CJB 청주방송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가 발표됐다. 고용노동부는 프리랜서 작가·PD 및 용역업체 노동자 등 비정규직 21명 중 12명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며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에 눈감고 있는 방송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29일 ‘지상파3사는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 성명을 발표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면서도 정작 방송 현장에서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으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방송계의 모순을 꼬집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방송작가를 비롯해 수많은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차별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나섰지만, 방송사들은 외면해왔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누구보다 민감해야 할 언론으로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노동보도의 긍정적 변화 속에서도 정작 방송사 스스로의 비정규직 고용구조와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구조적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방송사들의 대승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이틀 뒤인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대부분 언론이 노동절 특집보도와 특집방송을 내보낼 것이다. 다른 조직, 기관의 노동문제만 비판할 게 아니라 언론 자신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진정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길이 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언론사 불공정 고용관행은 물론이고 이번 방송작가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보도하는지 철저히 감시하겠다. 또한 방송작가유니온을 포함한 언론계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 투쟁하는 모든 노력을 지지하며 연대할 것”이라고 했다.

tvN 조연출로 방송업계의 문제를 지적하며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PD의 유지를 이어받아 설립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도 ‘무늬만 프리랜서’가 넘쳐나는 방송 노동의 현실을 바꿔나가는 일에 방송사가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매년 노동절마다 그러하듯 방송사들은 노동절을 다루는 뉴스나 시사교양, 다큐멘터리, 또는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매일 헌신하는 이들은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의 노동 환경에 처해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의 어깃장에도 상관없이,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은 이제 두려움을 떨치고 자신들의 노동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한 담대한 움직임에 계속 나서고 있다. 그 역사의 흐름을 무위로 돌리려는 노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며 “방송사들과 외주 제작사는 헛된 반동의 시도를 중단하고, 모든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이 제 권리를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당장 행동에 나서라”고 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131주년 세계 노동절, 방송-미디어 노동 ‘무늬만 프리랜서’의 굴레를 끊자!

어느덧 세계 노동절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비록 2020년 초부터 전 세계에 퍼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광장에 노동자들이 모여 함께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당장 광장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과 이를 개선하고 노동자가 지닌 당연한 권리의 마땅한 보장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절을 기념하는 계기가 되었던 ‘헤이마켓 사건’ 역시 1886년 미국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린 노동자들이 “하루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제한하라”는 요구에 미국 공권력과 자본이 경찰을 내세워 짓누른 대표적인 노동 탄압이었지만, 이러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2021년 현재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이어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2021년 현재, 방송-미디어 산업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지금 어디에 서 있나. 매년 노동절마다 그러하듯 방송사들은 노동절을 다루는 뉴스나 시사교양, 다큐멘터리, 또는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매일 헌신하는 이들은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의 노동 환경에 처해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91년 정부가 방송 산업의 육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외주 제작 프로그램 활성화 정책을 시작한 이래 방송국과 외주 프로그램의 관계는 수직적인 갑과 을로 고착화되었고, 1997년 한국을 강타한 IMF 경제위기는 공영-민영에 상관없이 모든 방송사가 ‘무늬만 프리랜서’를 방송-미디어 산업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 인해 과중한 노동시간과 도제 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수직적인 위계 관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실질적으로는 방송사나 외주 제작사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형식적으로는 근로계약서를 쓸 수 있는 기회도 제대로 부여되지 않는 ‘무늬만 프리랜서’가 되고 말았다. 각종 뉴스나 시사교양 프로그램, 때때로 드라마 등을 통해 사회 정의와 노동 환경 개선을 말했던 방송사들은 정작 자신들이 고용한 ‘무늬만 프리랜서’ 노동자들에게 노동권이 박탈된 상황은 철저하게 입을 다물기에 바빴다.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전해야 할 언론이 도리어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상황에서, 대다수의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은 어떤 부당한 일을 겪어도 쉽게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족히 20년 넘게 이어진 억압을 깨고 분출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 창립한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 2018년에 창립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와 프리랜서·파견직·계약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모인 언론노조 TBS지부, 2019년에는 언론노조 대구MBC 비정규직다온분회가 각각 결성되며 오랜 시간 동안 억압되었던 방송 노동자들이 점차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에 이르러 이 목소리들에게는 큰 힘이 실리고 있다. 작년 12월, 방송통신위원회가 향후 방송사 재허가 심사나 방송평가에서 ‘비정규직 고용실태’를 필수적으로 평가하겠다고 방침을 밝힌 것에 이어 지난 4월 26일에는 고용노동부가 14년간 프리랜서로 일하다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 당한 故 이재학 PD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알려지고 따까운 눈초리를 받은 CJB 청주방송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결과 상당수의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성(근로자성)을 2018년과 2019년의 드라마 제작 현장 특별근로감독에 이어 다시 한번 인정했다. 4월 27일부터는 KBS·MBC·SBS 지상파 방송 3사의 보도·시사교양 분야 작가에 대한 근로감독도 실시될 예정이다.

법원이나 행정기관 역시 이 목소리들이 정당한 요구라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3월 19일에는 MBC <뉴스투데이>에서 10년간 일한 작가 노동자 2명을 부당해고한 사건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가 사상 최초로 방송 작가가 근로기준법상 작가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4월 21일에는 CJB 청주방송에서 4년간 파견직이나 위탁 계약을 맺고서 근무한 MD(방송운행) 노동자가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대해 서울지방법원이 CJB 청주방송의 불법파견과 소송 제기 노동자에 대한 즉각적인 복직을 명령하는 판결했다. 이 판결 역시 관행적으로 대다수의 방송사가 MD 노동자를 파견직이나 위탁 계약으로 고용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던 모습에 최초로 경종을 날리는 역사적인 판결이었다.

이렇게 시대가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들은 구태의연하고 일방적인 노동의 관행을 밀어붙이고 있다. 올해 초 연쇄적으로 터진 드라마들의 논란에 대한 대처가 대표적이다. KBS는 드라마 <달 뜨는 강>를 방송하던 중 주연 배우의 학교폭력 논란이 불거지자 급하게 방송을 중단하고, 기존 방송분과 촬영분을 폐기한 뒤 일주일 만에 다시 방송을 재개했다. 그 과정에서 KBS와 외주 제작사 ‘빅토리픽쳐스’는 매우 자랑스럽게 “주말에도 밤을 새며 촬영을 강행하고, 상당수의 배우들이 재촬영료도 받지 않았다“면서 이를 미담으로 만들려 했지만, 이는 명백히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노동시간을 어기고 상당수 방송 노동자들에게 양해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일방적인 처사였다. 비슷한 시기 단 2화만 방송되고 제작과 방영이 중단된 SBS 방송, YG스튜디오플렉스·크레이브웍스·롯데컬쳐웍스 공동 제작의 <조선구마사> 역시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방송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지급 문제가 여전히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19년 6월,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언론노조와 함께 지상파 드라마의 표준근로계약서 제정·표준임금기준 제정·근로기준법에 근거한 촬영시간 준수·각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3자(방송사-제작사-스태프) 협의체를 만드는 것을 합의했던 KBS·MBC·SBS 지상파 방송 3사와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는 1년 반이 넘도록 후속 합의를 질질 연기하다가, 끝내 사실상 파기를 하고 말았다. 다른 노동 영역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처참하고 심각한 영역의 노동을 함께 개선하려는 노력은커녕, 이들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만을 살피며 시대를 역행하는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시대의 변화를 무시할 수 있을까.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의 어깃장에도 상관없이,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은 이제 두려움을 떨치고 자신들의 노동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한 담대한 움직임에 계속 나서고 있다. 그 역사의 흐름을 무위로 돌리려는 노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노동절을 맞이하여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의 움직임에 더욱 함께 할 것을 선언하는 동시에, 매년마다 ‘방송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기념되는 9월 3일에 즈음하여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장을 만들 것을 발표한다. 방송사들과 외주 제작사는 헛된 반동의 시도를 중단하고, 모든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이 제 권리를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당장 행동에 나서라!

2021년 4월 30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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