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TBS 재정지원 중단’ 가능성을 언급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된 후 TBS 내부도 적잖이 혼란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TBS가 편파적”이라고 주장하며 대놓고 흔들겠다는 취지로 발언한 오 시장이 당선된 후 김근식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도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또다시 TBS 재정지원중단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 실장은 이날 “박원순 시장이 독립재단으로만들었기 때문에 방송에 관여하지도 개입하지도 않고 마찬가지로 세금지원도 하지 않을 수 있다”며 “박원순 시장 덕분에 뉴스 공장은 당당한 자립의 길을 걸을 수 있지만, 박시장 덕분에 스스로 폐지 않고는 서울시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스스로 못 견디고 문 닫게 되면 오 시장 말고 박 시장을 원망하라”고 쓴 것이다.
TBS는 전체 재정 500억원의 70%인 300억~400억 원을 서울시로부터 지원받는 서울시 출연기관이다. 그러나 TBS의 재정지원 중단은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TBS는 지난해 2월 독립재단으로 출범했다. TBS의 재정지원을 중단하거나 변경하기 위해서는 서울시의회 승인을 거쳐야 하는데, 현재 서울시 의회 109석 중 101석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또 이사회 전체 인원 11명 중 2명만이 서울시 공무원이다. 과거 서울시 사업소였던 시절처럼 서울시장이 TBS 사장을 임명할 수 없는 구조인 만큼 당장 이강택 사장을 물러나게 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또 평화나무는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방송 편성에 개입할 수 없다’는 방송법을 근거로 오 시장을 고발했다.
그래서인지 오세훈 시장이 끄나풀 언론과 시민단체 등을 동원해 김어준을 물러나게 하려는 전략으로 우회했다는 의심이 든다. 국민의힘과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시민단체, 언론의 협공이 벌써부터 내부 조직원들에게 피로감을 가져오는 모습이다.
오 시장 당선과 함께 눈에 띄는 건,거의 매일같이 TBS로 출격한다는 1인 시위꾼들이다. 평화나무가 상암동을 찾은 13일 오후에도 TBS 사옥앞에서 시위를 이어가는 사단법인갑질 없는 세상 만들기 준비위원장인 소 아무개 씨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TBS 사옥 앞에는 ‘TBS교통방송 김어준을 서울시민의 이름으로 퇴출시킵시다’, ‘생떼 쓰는 김어준 뉴스공작질 편파방송 중단하고 교통방송 떠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피켓도 등장했다.
TBS 구성원들은 “종일 시끄러워 업무에 지장을 받았다”며 토로했다. 시위만 이어가는 것이 아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어준 퇴출’을 요청하는 국민청원이 등장했고, 동의 서명을 요청하는 메시지는 여러 단체 채팅방을 통해서 무한 전파됐다.
이같은 조직적 노력에 힘입어 지난 9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시된 “김어준 편파 정치방송인 교통방송에서 퇴출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은 나흘 만에 청와대가 답변해야 하는 동의 서명 기준인 20만명을 넘어섰다. TBS 내부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항의 전화와 댓글도 어마어마하게 빗발치는 중이다. 여기에 더해 선거를 마친 후 TBS 행정 담당 부서들은 더 바빠졌다. 서울시의회로부터 자료 제출 요구가 늘어난 탓이다. 이미 선거전부터 TBS 홍보부서의 피로감은 쌓일 대로 쌓여 있는 상태고, 행정직 직원 중에서는 ‘극한직업’이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이민을 생각한다” 또는 “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고충이 들려온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TBS 편파성 논란’ 또는 뉴스공장 진행자인 ‘김어준’을 키워드로 한 보도가 계속 쏟아진다. 14일에는 민감하다면 민감할 수 있는 김어준 씨의 출연료와 관련한 보도가 쏟아졌다. 방송의 편파성 주장이 먹혀들지 않을 것을 스스로 인증한 셈이다. 젊은 세대가 민감하게 여길 ‘불공정’ 프레임을 씌우려는 의도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주파수를 잘못 맞췄다. 창립 이래 제대로 빛을 본 적이 없는 TBS를 라디오 청취율 1위에 빛나는 방송사로 만든 김어준 씨다. 이 같은 성과를 낸 진행자의 출연료가 문제라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의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얻은 정보로 앉은 자리에서 얻은 부동산 불로소득 23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특히 개인 재산권과 대가를 누구보다 중시한다는 당에서 문제 삼기엔 참 민망한 주제다. 그럼에도 이들은 끊임없이 TBS와 김어준 씨, 또 이강택 사장에 대한 꼬투리 잡기에 집중할 것이고,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TBS 내부에서도 피로감이 쌓일 터. 결국, 내부에서도 김어준 씨 하차 의견이 제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TBS 스스로 위축될 수도 있다. TBS 복수의 직원들은 “아마 그들도 내부에서 먼저 김어준 씨 하차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모양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극우 유튜버들도 이런 목적을 숨기지 않는 분위기다. 반정부 집회를 주도해 온 전광훈 씨(사랑제일교회)를 적극 옹호하고 협력해온 이봉규 씨는 13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이봉규TV에서 ‘오세훈, 서울시 적폐청산 속도전?’이라는 제목으로 방송하면서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1년 3개월 남았다”며 “한정된 시간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느라 머리가 복잡하겠지만 취사 선택을 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TBS를 손보고, 서울시를 접수하면 오세훈 시장은 대선 주자로 우뚝 설 수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전광훈 씨를 앞세웠던 극우 인사들 사이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을 새로운 보수의 아이콘으로, TBS는 결집수단으로 삼는 분위기가 읽히는 것은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김어준 씨가 영원히 TBS 진행자로서 자리를 꿰차고 있으리란 법은 없다. 또 잘못 방송한 것들이 있다면 충분히 시청자로부터 비판받을 수 있고,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TBS와 김어준 씨에 대한 공격은 방송사의 인사와 편성에 개입할 뜻을 시사한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적 공세에 지나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주례연설을 편성하고, 각종 시정 홍보 방송으로 소위 발렸던 10여년전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시절 TBS 방송의 수준을 생각하면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대해 편파성 주장이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이 같은 외부의 속 보이는 공격에 의해 김어준 씨가 속절없이 하차하고 만다면, TBS가 어렵게 쌓아 올리고 있는 방송의 공공성은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이 현상이 더우려스러운 건, 오세훈을 중심으로뭉치는 이들이 전광훈을 중심으로 뭉쳤던 그 사람들이란 점이다. 오 시장은 지난 2019년 전광훈이 주도한 집회에 나가 각종 막말을 내뱉으며 현 정부 비판에 열을 올렸고, 주장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정권심판’을 내세워 서울시장 복귀에 성공했다. 후보자 토론회에서는 ‘전광훈 집회 연설 이력’을 문제 삼는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에게 “태극기 집회에 나가 연설한 것이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응수했다. “광화문광장이 이승만광장이 될 수도 있다”며 민주 시민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오간 말들이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이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