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는 지난 7일 이후 ‘언론 개혁 없이는 대선 힘들다’, ‘편파적인 언론 행태에 언제까지 휘둘려야 하나’, ‘포털의 편향된 뉴스 보도가 가장 큰 폐인’ 등 언론개혁을 주장하는 게시글이 100여개 이상 빗발쳤다.”
뉴시스가 지난 11일 보도한 기사 가운데 일부다. 제목이 ‘“이게 다 언론 탓”…재보선 참패 與, 언론개혁 속도 내나’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이 ‘4·7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것이 언론의 편파 보도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일부 시민들과 당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뉴시스 기사는 그런 분위기를 일정하게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는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기성 언론과 정치권이 쏟아내고 있는 선거 패인 진단과 분석에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민주당이 반성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언론 책임론’은 민주당이 해야 할 반성과 성찰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기성 언론의 ‘4·7 재보선 보도’는 공정했는가?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필자의 답은 이렇다. ‘그렇지 않다.’ 역대 총선과 대선에서 일부 언론이 보여준 편파 보도 문제는 심각했다. 이번 ‘4·7 재보선’에서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언론 문제’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 즉 후보자에 대한 자질 검증과 정책에 대한 검증 보도가 미흡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의 이번 재보선 참패 요인을 언론에서 찾는 건 곤란하다. 그런 식의 기준과 잣대라면 앞선 선거에서 민주당이 4연승 했을 때의 상황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민주당이 ‘4연승’ 할 때도 일부 언론과 상당수 기성 언론이 보여준 ‘선거 보도’의 문제점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참패=언론 책임론’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민주당은 선거에서 계속 참패 했어야 했다.
패배 요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번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선거 전략의 실패에 있다고 본다. 민주당 전략이 왜 실패했나를 두고서도 여러 분석과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성과의 모호함이 가장 컸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검찰개혁이든 언론 개혁이든 아니면 부동산 정책이든 민생 관련 사안이든, 유권자 입장에선 집권 여당의 성과가 체감적으로 느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얘기다. 언론의 불공정 보도를 얘기하기 전에 민주당이 이 부분에 대해 성찰하고 대안을 찾는 게 우선이다.
재보선 이후 언론 책임론 못지않게 제기되는 주장이 김어준 책임론이다. 4·7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참패에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
이른바 오세훈 당시 후보의 ‘내곡동 땅 의혹’을 재보선 기간에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집중적으로 방송했는데 그럼에도 선거 결과가 민주당 참패로 나타나자 일부 보수언론과 정치권에서 김어준 책임론을 제기했다.
김어준 책임론을 거칠게 요약하면 민주당이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높은 청취율에 기대어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했다는 것이고,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사실상 민주당의 저격수·선거대책위원장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선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디어오늘에 밝힌 입장이 있는데 필자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를 인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민주당의 170명의 의원이 김어준에 의해 움직인다는 얘기가 될 수 있는데, 그건 옳지 않다고 본다. ‘내곡동 땅 의혹’은 문제가 있으니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제기한 것이고, 관련해서 김어준이 다룬 것이지, 거기(방송)서 나온 문제제기를 우리가 받아서 전략으로 쓰지는 않았다고 본다.”
물론 이번 재보선 과정에서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제기한 여러 의혹과 방송 내용을 두고서는 찬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특정 정당의 선거 전략적 관점이 아니라 저널리즘 관점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저널리즘 차원에서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제기한 의혹들이 타당하고 온당한 것이었냐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필자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방송에서 제기한 의혹들이 합리적 수준에서 문제제기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고 본다. 언론이 어떤 인물이나 사안에 대해 의혹을 제기할 때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인지 △최소한의 근거가 있는 주장을 바탕으로 했는지 △제작진이 사실을 확인하려는 노력을 했는지 △당사자 혹은 상대방의 반론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필자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제기한 ‘내곡동 땅 의혹’이 이런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보지 않는다. KBS와 MBC, JTBC를 비롯해 오마이뉴스와 한겨레 등이 제기한 의혹을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다른 언론들에 비해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너무 과도한 비중을 들여 의혹을 제기한 것 아니냐는 반론과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의혹 제기라거나 민주당의 선대본부장 역할을 했다는 식의 비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다만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인 김어준이 제기한 이른바 포털 책임론은 정확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김어준은 ‘내곡동 땅 의혹’ 등을 보도한 일부 언론의 보도를 포털이 메인에 제대로 배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정확하지 않은 주장이다.
미디어오늘이 지적한 것처럼 네이버의 경우 3월30일부터 4월6일까지 ‘내곡동’ 의혹과 관련해 오세훈 후보에 비판적인 기사가 언론사별 ‘많이 본 뉴스’에 오른 경우만 집계해도 한겨레, 서울경제, 노컷뉴스, 이데일리, 한국일보, 뉴시스, 뉴스1, 미디어오늘 등의 기사 24건이 있었다. 이외에도 오태양 후보 폭행 논란, 세빛섬 누적 적자 문제 등 오세훈 후보자에 불리한 이슈들이 네이버와 다음에 공통적으로 높은 순위를 보이기도 했다.
무슨 얘기냐?‘오세훈 후보와 관련된 의혹들’이 중요한 이슈임에도 상대적으로 적게 뉴스 메인 화면에 배치됐다고 지적할 순 있어도, 포털이 의도적으로 ‘오세훈 후보 관련 보도’를 제외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얘기다. 필자 역시 오래전부터 포털 뉴스 배치의 공정성을 지적해 왔고, 포털이 뉴스를 유통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비판해 왔지만 “과거 선거였다면 KBS (내곡동 측량 현장) 보도는 결정적 국면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김어준 씨 주장에는 동의하긴 어렵다.
필자 역시 ‘내곡동 땅 의혹’이 공직자 검증에 있어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해당 이슈가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과거에 비해 적었다고 보는 게 온당하지 않을까 싶다. 민주당을 비롯해 언론이 무게중심을 둬야 하는 일은 ‘왜 이번에는 후보의 도덕성이나 윤리와 관련된 사안이 유권자들 표심에 영향을 적게 미쳤는지’를 분석하는 일 아닐까. 언론과 포털 책임론이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 패배와 이를 직접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민주당의 반성과 성찰에 비중을 두며 글을 쓰긴 했지만 사실 언론도 되돌아봐야 할 점이 많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의 편향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상당수 기성 언론들이 후보자 검증 보도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검증’보다는 ‘공방’에 비중을 실었다는 얘기다. 왜 이런 현상이 선거 때마다 개선이 되지 않고 반복되는 걸까. 필자는 특정 정당에서 제기한 의혹을 언론이 검증하려고 나섰을 때 결과적으로 한쪽 편을 들게 되는 상황을 우려한 몸 사리기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본다. 의혹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검증하는 게 기준이 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보도했을 때 누구에게 이득이 되고 불리한지를 먼저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 국한시켜 말하면,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을 보도할 경우 ‘친여 매체’라는 딱지가 붙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얘기다. ‘기계적 균형’을 선호하는 상당수 언론사들이 선거 기간 동안 굳이 이런 위험부담을 감수할 필요가 있냐는 ‘전략적 판단’을 한 건 아닐까. 물론 ㅇ건 어디까지나 필자의 개인적인 의심이다. 분명한 것은 ‘네거티브’와 ‘검증 보도‘에 대한 언론사별 기준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최소한 그 기준이라도 마련하고 선거 보도에 임하는 게 순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