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드라마 6화]'황금주파수 쟁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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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드라마 6화]'황금주파수 쟁탈전'
  • 평화나무
  • 승인 2021.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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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반만 믿어라
노광준 전 경기방송 PD
노광준 전 경기방송 PD

 

고담시,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방송국 선정'으로 쏠렸다. 과연 1년째 비어있는 FM 99.9의 새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방통위가 주관하는 공모절차에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경제계, 언론계, 문화예술인들까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사실 99.9는 인구 천만이 넘는 고담시의 알토란 같은 황금채널로 누가 사업자로 선정되든 깨알 흑자가 예상되기에 아는 사람은 다 군침을 흘렸다. 가성비도 뛰어났다. 라디오는 TV와 달리 돈이 많이 안 드는 데다 보이는 라디오를 하면 유튜브를 타고 몇백만 구독자를 가진 부자 채널이 될 수 있었다. 이웃 중진 시의 라디오 '뉴스농장'이 유튜브에 진출해 털보 농장주에게 억대 연봉을 안겨준 사건은 모든 라디오 사업자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줬다. 자기 얼굴이 안 나온다며 라디오를 무시해온 정치인들도 슬그머니 99.9 공모 관련 정보를 챙겨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방통위가 공모를 시작했다. 무려 10곳의 사업자가 원서를 냈다. 10대 1.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우선 부적합 사업자부터 걸러냈다. 예를 들어 고담 시내에서 아파트나 도로건설을 무진장 맡고 있는 건설사가 최대주주로 참여한 경우 도저히 공정한 방송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해 탈락시켰다. 수백억 적자인 TV 채널을 운영하면서도 이번 라디오 공모전에 뛰어든 사업자 역시 탈락시켰다. 라디오에서 흑자가 나오면 이를 라디오에 재투자하지 않고 TV 적자 메우는데 쓸 게 뻔했으니까. 조커(배트맨의 맞수인 전설의 빌런)가 대주주로 의심되는 사업자도 탈락시켰다. 이런 식으로 거르고 나니 딱 3곳이 남았다. 최종결승전의 방식은 서바이벌 오디션, '방송의 공정성'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계획을 발표하고 질문을 받는다. 운명의 날은 9월 9일 9시였다.

가장 먼저 '편파방송 척결' 이란 구호를 가슴에 단 사업자 A가 발표를 시작했다.

"저희는 중진 시에 있는 '뉴스농장'처럼 편파방송을 하지 않겠습니다. 절대 한쪽의 의견만 다루지 않겠습니다. 양쪽의 의견을 균형 있게 다뤄야 공정 방송입니다. 찬성의견과 반대의견을 균형 있게, 여당과 야당 의견을 골고루 다루겠습니다. 중립적이고 공평한 방송을 하겠습니다."

자신만만한 A를 향해 질문이 시작됐다. 

질문 : 양쪽 의견을 다 반영하겠다고요?
A : 예, 한쪽 의견만 있는 건 안 다룹니다.
질문 : 그럼 이럴 때 어떻게 할까요? 
A : ??
질문 : 예를 들어 시장 의혹에 대한 제보가 들어온다. 그런데 시장 측은 어떤 답변도 안 한다. 인터뷰나 토론도 거부한다. 그러면 양쪽 의견을 다 듣지 못했으니까 방송에서는 아예 안 다뤄야겠네요?
A : 아 그건.....

A가 머뭇거렸다. 질문은 계속됐다.

질문 : 미국에서도 언론은 '공평해야 한다'는 점을 악용해 거대 권력이나 기업이 답변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말문을 막는 일이 사회문제입니다. 공평성만 강조하면 오히려 민감한 사회현안을 다룰 수 없고 언론자유를 뺏는다고 해서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는 '공평의 원칙'을 지난 1985년에 폐지했습니다. 알고계신가요?
A : ....(묵묵)

그렇게 A는 아웃됐다. 다음은 B 사업자. 그는 잡스처럼 터틀넥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뉴밸런스 운동화를 신은 채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라디오를 주로 어디서 듣습니까? 그렇죠. 차에서 듣습니다. 차에서 운전대 잡은 사람들의 관심사는 뭘까요, 교통정보입니다. 지금 문제 되는 '뉴스농장'은 원래 교통정보와 생활정보를 제공하는 방송입니다. 재난정보를 전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정치에 개입하지 말고 황사나 미세먼지, 집중호우나 폭설 같은 정보를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 문제없어요. 아니 재난정보에 진보 보수가 어디 있습니까. 교통정보에 여야가 따로 있나요. 진행은 지금처럼 털보 농장주가 해도 괜찮아요. 단, 교통, 생활, 재난정보에 충실해야죠. 기본에 충실할 것. 이게 저희가 생각하는 공정 방송입니다."

 B 사업자는 자신들이 전 세계 라디오의 교통방송을 모니터링했고 이를 최첨단 인공지능과 연결해 3D로 구현해낼 수 있다며 가상현실(VR)을 이용해 열심히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중 발표시간 초과로 내려왔다.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 : 전 세계 라디오를 모니터 하셨다면서 정작 '뉴스농장'은 안 들어보셨나봐요?
 B : ??
질문 : '뉴스농장'에서 교통정보 다 전해요. 
 B : (당황하며) 재난방송을 해야죠.
질문 : 그것도 해요. 코로나 19 같은 재난이 또 어딨어요? 확진자 수가 급증할 때는 거의 매일 해외 상황까지 전해주던데 안 들어보셨죠? 보수신문만 보시고.
 B : .....(묵묵)  

 B도 아웃 됐다. 나가면서 그는 보좌진들한테 소리를 빽 질렀다. '뉴스농장 모니터링한 놈 누구야, 이런 식으로 날 엿 먹여?'

 마지막으로 C 사업자가 올라왔다. 그는 '1380만'이란 글자를 보여주면서 발표를 시작했다.

"1380만 명, 고담시의 인구입니다. 99.9의 주인이 결정되면 가청인구 1380만 명의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메트로 채널이 됩니다. 이런 채널을 수익성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게 맞을까요? 저희는 공영방송입니다. 어떻게 하면 방송을 공정하게 만들까 고민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모든 방송에서 다루는 의제 설정이 공정하지 않습니다. 서울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벚꽃이 피어도 여의도 벚꽃만 비춥니다. 고담시 곳곳에 피어난 아름다운 벚꽃들은 언급도 안 됩니다. 어쩌다 고담시 뉴스가 메인에 오르면 영락없이 연쇄 살인범의 엽기 행각이나 잔혹 범죄, 땅 투기 관련이다 보니 살인의 추억, 욕망의 땅으로 비칩니다. 개발업자로부터 숲을 지키고 자연을 보존하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묻힙니다. 투기 의혹을 감지한 지역의 목소리는 서울발 00 논란에 가려집니다. 이제 우리 지역의 목소리가 뉴스가 되고 라디오가 되는 지역민 중심 의제 설정으로 서울 중심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이 이 시대의 공정입니다."

날 선 질문들이 이어졌다.

질문 : 말이 공영이지 시장의 치적 홍보방송 아닌가요?
C : 고담시 산하기관이 아닌 비영리 독립법인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질문 : 그래도 어차피 방송국 사장은 시장이 임명하잖아요?
C : 시장이 독단적으로 임명할 수 없도록 각계각층으로 구성된 사장추천위원회가 후보를 올리고, 방송국 내부도 사장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투명한 견제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방송국 이사는 공모로 뽑고 모든 회의록이 공개됩니다.
질문 : 지금 있는 방송들도 힘들어하는데 굳이 시민의 혈세를 쏟아부어야 할까요?
C : 고담시에 있는 공공기관들이 기존 언론에 주고 있는 정책 홍보비의 일부만 방송국에 투자해도 충분히 운영되고 민영처럼 수익을 주주들이 가져가는 게 아니라서 지역 내 좋은 일자리가 계속 창출됩니다.

C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지역은 허구이지만 방송 공정성에 대한 실제 논의에 기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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