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이재학 PD가 CJB 청주방송의 부당해고에 맞서다 세상을 등진 지, 1년하고도 두 달이 지난 4월 8일 목요일 오후 2시 15분. 고인의 근로자지위확인 항소심 첫 변론이 청주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번 항소심은 청주방송 사측이 지난해 9월 법원 조정 절차로 마무리하기로 한 합의를 위반하면서 유족 측이 고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 불가피하게 제기한 재판이다. 이름만 프리랜서인 비정규직의 희생을 막고자 법률적 판결을 받고자 했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함이다. 더욱이 고인이 왜 스스로 목숨을 벼리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는지 1심의 부당함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고함이기도 하다.
원고측, 고인의 법률대리인은 최후변론에서 “고인은 15년간 소위 프리랜서로 근무했으나 무늬만 프리랜서로서, 근로자였으며 부당해고됐다. 또, 비정규직 문제에 선례를 남기고 싶어했다. 쟁점인 근로자성과 부당해고가 사실을 바탕으로 법률적 판결로 확인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고인은 1심 재판에서 진실이 왜곡되는 것을 목격했다. 항소심 판결이 고인의 바람과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되어야 하며, 근로자성과 부당해고 부분이 사실을 바탕으로 법률적 평가가 판결문으로 확인되어야 한다”며 “고인과 유족에게 끝나지 않은 과제로 남아서는 안 된다. 고인과 유족에게 위로가 되는 판결이 나와야 한다”고 요청했다.
유족 대표이자 고인의 동생인 이대로 씨는 법정 최후 발언에서 “형은 1심 과정에서 억울함을 겪고 떠났다. 항소심에서 형의 뜻이 판결로 나오길 기대한다. 고인은 전국에 만연한 미디어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본인의 소송을 통해) 알리고자 했다”며 “고인과 유족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사법부에서 구체적 근거로 판결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사법부의 판결로 싸움을 치유의 시간으로 바꿔달라”고 재판부에 주문했다.
이대로 씨의 최후 발언 음성은 담담했다. 그러나 그 담담한 발언 속에 유족으로서 혼신을 다하고 있음을, 그 진심이 재판부에 전달됐으리라. 피고(청주방송 사측)는 “청주방송이 고 이재학 PD의 근로 실질의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고인의 근로자성과 부당해고를 인정하나 부당성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내지 않겠다. 근로자성 등은 재판부에 판단 구한다”고 변론했다. 이번 항소심이 조기에 마무리되는데 협조해 달라는 유족의 6개월간 지속된 끈질긴 요구를 수용한 결정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첫 공판을 끝으로 변론을 종결했다. 이제 고 이재학 PD의 근로자성과 부당해고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판단에 맡겨졌다. 법원은 원고 고 이재학 PD와 피고 청주방송, 양측이 인정한 사실을 토대로 고 이재학 PD의 근로자 지위와 부당해고와 관련해 오는 5월 13일 오후 2시에 판정할 예정이다. ‘상식대로’만 판정이 이뤄진다면, 고인의 바람대로 미디어 비정규직 노동과 관련해 선례를 남기고, 유족의 뜻대로 치유가 되는 판결이 될 것이다.
고 이재학 PD가 근로자성 인정과 부당해고 구제 소송을 시작한 지 3년 8개월. 고인이 직접 나섰던 법적 싸움은 외로운 투쟁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재학 PD가 고인이 된 이후에야 유관 단체가 함께 나서 싸웠다. 언론도 관심을 가졌고, 정치권도 나섰다. 이 점은 너무 아프다. 그러나 5월 13일 판결 공판은 고 이재학 PD 한 개인의 항소심 종결을 넘어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매우 의미깊은 순간이 될 것이다.
고 이재학 PD 사망 이후 청주방송 사내 프리랜서와 비정규직의 처우가 개선됐다. 언론노조를 비롯한 여러 연대 단체들이 나섰고, 언론과 정치권도 힘을 보탠 결과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아쉬움도 크다. 고 이재학 PD의 뜻을 청주방송을 넘어 다른 방송사로 확산시키지 못했다. 청주방송 사업장 내 비정규직 처우개선의 내용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방송계 대표적인 ‘무늬만 프리랜서’인 방송작가 역시 부당함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했다. 방송작가 또한 노동자지만 노동자의 지위는 상시 부정돼왔다. 지난 3월에야 최초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MBC 부당해고 방송작가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됐다. 그마저 1인 시위부터 각종 인터뷰 등 수많은 공론화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국회와 여러 시민사회단체의 지지연대를 끌어내는 과정도 지난 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방송작가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중노위 판정에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노무사, 노동법 연구가 등 관련인들과 정치권의 관심도 크다. 지난 4월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방송작가도 노동자다’ 토론회는 언론인들의 취재 요청이 줄을 이었으나, 코로나 사정으로 취재를 제한하기도 했다.
방송작가의 근로자성과 부당해고를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 판결문이 4월 18일 내에 MBC에 송달되면 사측은 한 달 이내에 판정을 이행해야 한다. MBC는 판정에 승복하고 해고된 작가를 복직시키거나 판정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MBC가 택해야 할 선택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상식적인 판결이 이뤄진다면, 상급법원의 법리판단도 다를 리 없기 때문이다.
맞다. 방송작가는 노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출범 4년째를 맞고 있지만 방송사는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방송작가지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방송작가의 교섭권 투쟁에 전면 나서고자 한다. 정부 또한 더 이상 방송계 비정규직의 눈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고용노동부는 지상파 주요 방송사를 상시 근로 감독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재허가권 심사 과정에 비정규직 문제를 더 세심히 들여다봐야 한다. 고 이재학 PD뿐 아니라 방송작가도, 아니 방송사 내 수많은 무늬만 프리랜서 모두 노동자다!
이미지 전국언론노동조합 특임부위원장·전 방송작가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