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꼭 30년 전 봄 강경대 열사가 돌아가신 이후 나는 노태우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결단코 살지 않겠노라고 결심한 적이 있었다. 겁도 많고 체력도 약해빠진 나였지만 그때부터 나는 정말로 이를 악물고 화염병을 던졌다. 그러다가 군대를 갔고, 1994년 다시 복귀했다. 2년 반만의 복귀였기에 나는 누구보다도 화염병을 열심히 던질 자신이 있었다. “시켜만 주시면 제일 앞에서 제일 용맹스럽게 싸우겠습니다”라고 큰소리를 칠 준비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복귀를 했더니, 선배들이 “지금부터는 화염병 안 던져도 된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려줬다. “그러면 쇠파이프를 들까요?” 했더니 선배들은 “아냐, 이 미친놈아. 요즘은 그런 거 하는 시대가 아니라니까”라고 핀잔을 주더라. 이럴 수가! 할 줄 아는 게 그거밖에 없는데 그걸 안 하면 나는 뭘 하란 말이냐?
“그럼 전 뭘 하면 됩니까?”라며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더니 선배들은 난감한 표정(‘그러게, 쟤는 뭘 시키면 좋을까?’라는 표정이었음)으로 나에게 선전 관련한 일을 맡겼다. 주로 을지로에서 선전물을 인쇄하거나 운반하는 일이었는데. 쉽게 말하면 잡일 담당이었던 셈이다. 복귀만 하면 원수(?) 노태우와 장렬한 일전을 겨룰 줄 알았는데 대통령은 김영삼으로 바뀌었고 시대는 변했다. 할 줄 아는 게 군부독재 타도 투쟁밖에 없었던 나는 쓸쓸히(!) 2년여 동안 을지로에서 인쇄물을 날랐다.
그것은 헤게모니였다
원래 나는 누가 시키면 토 달지 않고 무척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어서, 선전물 인쇄와 운반으로 보냈던 2년여의 세월을 별로 후회하지 않는다. 앞에서는 잡일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일이 하찮은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우리의 생각을 알리기 위해서는 선전물이 꼭 필요했고, 누군가는 그 인쇄물을 주문하고 운반해야 했다. 하지만 그 일이 하찮아서 하는 말이 절대 아니라, 일전불사의 각오를 다졌던 나에게 화염병과 쇠파이프 대신 을지로 인쇄소 전화번호를 쥐어줄 때는 그에 합당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 나는 이유를 물었고, 선배들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답해주었다.
“그 시대라는 게 대체 어떻게 바뀌었는데요?”라고 물었을 때 나에게 돌아온 답은 “지배계급은 더 이상 무력으로 통치하지 않는다. 그들은 헤게모니를 통해 통치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문민정부의 시대가 열렸을 때, 지배계급의 통치 수단은 총칼이 아니라 헤게모니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의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상가 반열에 올라 마땅한 그람시는 무솔리니 파시즘 정권의 탄압으로 일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냈다. 1928년 재판에서 검사가 “우리는 이 자의 두뇌가 작동하는 것을 20년 동안 중지시켜야 한다”는 말로 그람시를 투옥한 사실은 파시즘 정권이 그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잘 보여준다.
20세기 들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그람시는 지배계급의 통치 방식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지배계급은 민중들을 무력으로 짓밟았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20세기 통치 수단은 무력이 아니라 여론으로 바뀌었다. 시민사회에서 합의된 여론이야말로 통치의 근간이 됐다는 이야기다.
그람시는 시민사회에서 합의된 이 여론을 헤게모니라고 불렀다. 이제 승패는 누가 더 강력한 무력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헤게모니를 더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느냐로 갈리기 시작했다.
노태우와 김영삼의 결정적 차이가 이것이었다. 노태우는 무력을 사용했지만, 김영삼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민중들을 통제했다. 그래서 우리도 바뀌어야 했다. “김영삼 타도!”를 외치며 화염병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새로운 세상을 설득하는 헤게모니 투쟁이 필요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람시는 설혹 누군가가 어떤 이유로 정치 권력을 차지하더라도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하면 그 권력은 곧 사라질 것이라 예견했다. 시민사회의 힘이 너무나 강력해서, 아무리 정치 권력이 이를 무력으로 누르려 해도 그것이 불가능한 세상이 열렸기 때문이다.
시민사회가 발달한 서구 사회에서 쿠데타가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해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않은 곳에서는 쿠데타 같은 것이 아직도 가능하다. 지금 군부 쿠데타가 벌어진 미얀마나, 쿠데타가 일상인 아프리카 여러 독재 국가들이 그런 나라들이다.
다시 또 다시 전진해야 한다
보궐선거가 민주진보진영의 참패로 끝났다. 선거의 패인은 다양할 것이고, 나는 그 패인을 분석할 정치적 식견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주제넘게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번 선거의 패인 중 하나를 헤게모니 다툼의 패배로 본다. 정치권력은 바뀌었지만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람시가 헤게모니 다툼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언론과 지식 사회다. 그런데 이 두 영역에서 헤게모니는 여전히 보수·자본이 쥐고 있다. 자본에 의해 통제되는 언론이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행태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지식 사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대학 교수들은 자본이 지원하는 돈의 힘에 무릎을 꿇은 지 오래다. 그들은 자본의 이익에 해가 되는 진보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 선거 과정에서 그들이 내뿜었던 각종 오물과도 같은 거짓 지식들은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를 잠식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넋 놓고 주저앉는 것은 당연히 대안이 아니다. 투덜대는 것도 묘책이 될 수 없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시민사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자본에 장악된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를 되찾기 위해 길고 지루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경쟁 교육에 찌들었던 청년 세대를 설득하기 위해 더 다양한 교육 사업을 시작하자. 투덜댈 시간에 우리는 더 겸손한 자세로 그들을 만나야 한다. 청년 세대의 보수화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따위 세상을 물려준 우리의 잘못이다. 대안 언론을 통해 언론지형을 바꾸기 위한 싸움을 지속해야 한다. 99대 1로 기울어진 언론지형을 최소한 50대 50 정도로 바꾸지 않는 한 헤게모니 싸움에서 이길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상황이 절망적이냐? 전혀 그렇지 않다.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말과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말은 동의어가 아니다. 그리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언제는 헤게모니 지형이 우리에게 유리했던 적이 있었나? 우리는 늘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싸웠고 역사적인 진보를 쟁취해왔다.
철학자 니체의 말 중 내가 무척 좋아하는 것이 있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풍파 없는 항해,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는 것이다.
다시 또 다시, 신발 끈을 질끈 매고 시민사회 속으로 뛰어 들어가자. 그 길이 어려워 보일수록 내 가슴은 뛴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