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미싱은 돌고 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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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미싱은 돌고 도네"
  • 토마토(20년차 방송작가)
  • 승인 2020.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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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천여 명이 모인 카카오톡 채팅방이 있다. 이름하여 방송작가 대나무숲이다. 이곳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방송작가들의 한숨과 울분이 쏟아진다. 방송사 본사와 외주제작사, 요즘은 유튜브 제작사의 갑질에 대한 하소연도 올라온다. 

일한 대가를 받지 못하거나 오랫동안 일하던 프로그램에서 하루아침에 해고통보를 받기도 하고, 녹화 당일 작가가 바뀌어있었다는 등 기가 막힐 사연들을 만난다. 최근에는 모 방송사 보도국에서 사건이 터졌다. 

밤 10시에 출근해 오전 9시에 퇴근하며 원고를 쓰고 숨 가쁘게 일했던 작가가 있다. 해당 작가는 새벽에 일어나야 아침 생방송을 할 수 있기에 숙직실에서 밤을 보냈다. 행정업무도 처리하고 아이템을 데스크에게 검토받는 일을 무려 10년이나 했지만 지난 6월, 갑자기 계약이 해지됐다. 

이런 사례는 이 작가가 처음이 아니다. 그전에도 작가들이 단체로 갑작스런 계약해지 통보를 받는 일은 종종 있었다. 나 역시 주변에서 목격하곤 했다.한 후배는 당장 다음 주부터 나오지 말라는 PD의 말에 울며 짐을 쌀 수밖에 없었고, PD가 나 몰래 뒤에서 작가를 구하는바람에 녹화장에 가서야 새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되는 일도 있었다. 

이뿐 아니라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기간에는 기획료를 주지 않는 곳이 태반이다. 어떤 곳에서는 오랫동안 일한 작가에게‘그간의 정이 있지 않냐’며 기획료를 지급하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기도 한다. 

작가 생활 20년간 ‘너희는 땅 파서 먹고사냐’고 말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마음의 소리를 그대로 입 밖에내는 순간 어떤 결과가 찾아올지 너무나 잘알기에 애써 삼키는 일도 일상이 됐다. 월평균 소득도 일부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턱없이 낮다. 최근에야 최저임금제 때문에 막내 작가들의 페이가 올라가곤 있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 제작사가 많고, 막내 작가의 페이를 올리느라 연차 많은 작가의 페이가 깎이는 일도 있다. 결국, 파이 나눠 먹기인 셈이다. 프리랜서 방송작가들의 고용구조나 처우개선은 여전히 열악하다. 

누구보다 프로그램에 대한 열정이 많고, 열심히 일하며 온종일 방송국에 매여 지내는 이들이 방송작가지만, 방송사는 프리랜서라는 포장을 씌운 뒤 노동자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PD 마음대로 쉽게 갈아 끼우면 그만인 부속품처럼 취급받는 것이 ‘방송작가’다 보니, 당연히 받아야 할 기획료도 인심 좋은 방송사가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방송작가의 대다수는 여성이다. 현재 방송사들은 수많은 프리랜서와 비정규직들이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선임연구위원과 협업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공부문 방송사가 프로그램 제작·지원에 활용하는 비정규직 약 8000명 중 15.9%가 프리랜서고, 이 중 약 35%에 달하는 방송작가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미디어오늘 10.26보도 참고).

이런 현실에서 나는 전태일 열사에 대한방송사들의 기획 보도를 볼 때면 마음이불편해진다. 이내 채널을 돌리고 만다.열사의 동상 앞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방송사들은 과연 얼마나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의 권리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을까 싶다그때의 전태일 열사는 가난과 질병, 그리고 저임금 속에 고통받는 어린 여공들을 위해 싸웠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 여공들처럼 지금 방송사 곳곳에는 부당해고와 저임금에 시달리는 방송작가들이 있다. 방송작가 노조나 방송작가 협회가 이들을 대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여공들을 착취하듯 방송작가를 착취하는 방송사들이 전태일 열사의 이름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적은 임금을 주고 언제든 해고할 수 있게 프리랜서들을 착취하며 만든 프로그램으로 돈 좀 많이 버셨냐’고도 묻고 싶다. 방송작가를 비롯한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방송사들의 전태일 열사 보도는 자기 성찰 없는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토마토(20년차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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