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지방법원 형사34부(부장 허선아 판사)는 지난달 30일 공직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광훈 씨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이는 담당 재판부 ‘탄핵’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하게 하는 등 시민들의 반발을 낳았다. 검찰도 전 목사에 대한 1심 재판부 판결에 불복하여 지난 4일 항소장을 제출하였다.
하지만 검찰이 당초 전 씨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면서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특정 의원들 이름을 증거 자료에서 삭제해 법원의 무죄판결을 자초한 정황이 드러났다.
나는 지난 2019년 12월 6일 전광훈 씨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선관위에 신고했다. 당시 신고서를 살펴보면, 전 씨가 전날인 12월 5일 부산집회에서 정우택과 김진태 전 의원을 언급하며 4.15 총선을 앞두고 사전 선거운동 발언한 사실을 함께 기재했다.
선관위도 그 신고 내용을 반영해 전 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그런데 법원이 공개한 전광훈 씨 판결 설명자료에 나오는 ‘공소사실 요지’의 해당 부산집회에서 한 전 씨 발언문에는 두 사람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
서울지방법원 형사34부(부장 허선아 판사)는 지난달 30일 전광훈 씨의 ‘무죄판결’ 직후 ‘판결 선고 설명자료’를 배포해 이 같은 판결을 내놓은 이유를 알려 이해를 구했다. 이 자료를 토대로 1심 재판부는 어찌하여 전 씨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무죄’ 판결을 하였는지, 그 문제점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1심 재판부의 전광훈 씨 무죄판결 이유
재판부가 요약한 검찰의 전광훈 씨의 공직선거법 위한 관련 공소 요지는 다음과 같다.
○ 피고인은 2018년 공직선거법위반죄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고 위 판결이 확정된 후 아직 10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사람으로서 선거운동을 할 수 없음.
○ 그럼에도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자유우파 정당’을 지지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확성장치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함과 동시에 선거운동 기간 전에 선거운동을 하였고 ② ‘기독자유당’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여 유튜브 방송을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하였음.
재판부는 검사의 공소 요지 중에 ‘핵심 쟁점’을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한다.
① 피고인이 특정 정당을 지지한 것인지 여부(‘자유우파 정당’에 대한 지지 관련).
② 특정 개인 후보자를 전제하지 아니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만으로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운동에 해당될 수 있는지 여부.
그런 뒤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모두 무죄’ 결론을 내린다.
① 이 사건 각 집회에서 피고인이 지지하였다는 ‘자유우파 정당’은 그 의미 자체가 추상적이고 모호하여 그 외연의 범위를 확정할 수 없고, 그에 해당되는 실제 정당을 명확히 특정할 수도 없음.
② 달리 보더라도, 이 사건 각 집회에서의 발언은 그 발언 시점에 아직 제21대 국회의원선거와 관련한 정당의 후보자 등록(2020. 3. 26-2020. 3. 27.)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는바,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운동 개념의 전제가 되는 특정 후보자가 존재하지 아니하는 점에서 여전히 공직선거법이 정한 선거운동에 해당되지 아니함.
‘사전 선거운동’ 인정 요건
1심 재판부가 전광훈 씨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을 내린 핵심 근거 중 하나는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운동 개념의 전제가 되는 특정 후보자가 존재하지 아니하는 점”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전광훈 씨의 각 집회 발언 당시에는 정당 후보자 등록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는 후보자 등록 이전에 행한 ‘선거운동’은 공직선거법상의 선거운동이 아닌 걸로 자칫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기간(선거 개시일부터 선거일 전일까지) 전에 각종 인쇄물, 방송·신문·뉴스통신·잡지, 그 밖의 간행물, 정견발표회·좌담회·토론회·향우회·동창회·반상회, 그 밖의 집회, 정보통신, 선거운동기구나 사조직의 설치, 호별방문, 그 밖의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행위는 ‘사전 선거운동’으로 보아 금지한다. 이를 어긴 자에 대해서는 ‘선거운동기간위반죄’에 해당한다고 보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공직선거법 제254조).
다만 어떤 사람의 행위가 ‘사전 선거운동’으로 인정되려면 “특정 선거에서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행위”(대법원 2018. 4. 19. 선고 2017도14322 전원합의체 판결, 헌법재판소 2008. 10. 30. 선고 2005헌바32 전원 재판부 결정)여야 한다.
사라진 두 사람 이름
1심 재판부도 설명 자료에서 ‘특정 개인 후보자의 존재’의 유무를 비중 있게 다룬다. 문제는 재판부가 인용한 ‘(검찰) 공소사실 요지’ 내용 중 나오는 전광훈 씨의 각종 집회에서 행한 발언 인용문에서는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특정인의 이름을 찾아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유일하게 언급되는 인물은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인 황교안 씨다. 재판부가 검찰 공소장에 나오는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특정 인물들 이름을 굳이 고의로 삭제하였을 리는 없어 보인다. 따라서 재판부로서는 전 씨가 ‘특정 개인 후보자의 존재’를 알 수 없이 선거 관련 발언을 한 걸로 판단해 ‘모두 무죄’ 판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전 씨는 검찰 공소요지에 나오는 각 집회에서 과연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특정 개인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사전 선거운동성 여러 정치 집회에서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인물들 이름을 거명한 바 있다. 가령 그는 2019년 12월 5일 부산에서 열린 야외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나는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매일 같이 연구하는 사람이다. 내년 총선에서 우리 자유 우파가 200석을 하면 우리는 제2의 건국을 할 수 있다. 황교안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 강원도와 충청도도 60% 이상 우리에게 넘어왔다. 강원도에는 김진태가 있고 충청도에는 정우택이 있다. 여러분 주변의 서울 사람들 다 연락해서 설득하라”
나는 전 씨의 이 같은 발언을 사전선거운동으로 보고 2019년 12월 6일 선관위에 신고하였다. 이에 서울시선관위는 전광훈 씨에 대한 조사를 마친 뒤 12월 27일 서울중앙지검에 전 씨를 ‘고발’하였다. 선관위는 전 씨가 “선거권이 없는 자로서 확성기 장치 등을 이용해 사전 선거운동을 하였다”고 보았다. 전광훈 씨는 19대 대선 당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의 단체 문자메시지 397만 건을 발송하는 등의 불법 선거운동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선거권을 상실한 상태였다.
당시 내가 신고서에서 인용한 전 씨의 발언 녹취 내용을 그대로 반영해서 검찰에 고발하였는지, 최근 서울시선관위에 확인해 보았다. 서울시 선관위 관계자는 “고발장은 비공개 사항이라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다. 다만 신고한 사항에 대해서는 그대로 반영하였다”고 하였다. 이는 선관위가 전광훈 씨의 정우택과 김진태 전 의원에 대한 언급 내용을 고발장에 반영하였음을 알려준다. 사실 선관위로서는 당연한 조치다.
전 씨는 12월 5일 부산 집회 말고도 전국 곳곳을 돌며 사전선거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서울시선관위는 줄곧 ‘선거법 준수 촉구’나 ‘공명선거 협조 요청’ 등의 가벼운 조치만을 하였다. 그 이유는 전 씨가 각종 집회에서 행한 발언들이 “특정 선거에서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수준”이라 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씨는 부산 집회에서는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인물인 정우택, 김진태 전 의원의 이름을 분명히 거명하였고 “자식, 사위, 제자, 친구, 모든 관계성 있는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설득하라”고 선거운동 방법까지 일러주며 지시하였기에 선관위도 최고 수준의 행정조치인 ‘고발’을 한 거였다.
그런데 정작 법원이 공개한 검찰의 공소 요지 인용문에는 두 사람의 실명이 빠져 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이 공소장에서 두 사람의 실명을 삭제해 사실상 전 씨를 봐주기 한 게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검찰은 전 씨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였다. 과연 그 항소장에는 전 씨가 부산 집회에서 정우택과 김진태 이름을 공개 거명한 혐의를 추가하였는지 궁금하다.
1심 재판부의 전 씨에 대한 ‘무죄 판결’로 성난 시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이용해 재판부 ‘탄핵’ 청원까지 하였다. 하지만 실은 검찰의 허술한 공소장이 ‘무죄’를 낳은 주요 원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를 유추하게 하는 근거들이 하나 둘씩 계속 느는 중이다. 가령 전광훈 씨의 변호인 중 한 명인 이성희 변호사는 작년 3월 한 보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검찰이 조사 과정에서 전 씨에 대해 얼마나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는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조사과정에서) 검사님도 이 사건에 대한 오해를 많이 풀어 주셨다....선거운동에 대해서 개념은 분명히 다툼의 소지가 있다. 송구영신예배 덕담을 만담 형식으로 한 것을 (선거법 위반으로) 할 수 있냐도 조금 의문이 있다. 또 기독자유당 전당대회 축사를, (선거법 위반으로) 그렇게 볼 수 있겠냐, 라고 하면서 의견서까지 내라고 할 정도 우호적이었다. 그 와중에 보석에 대한 것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얘기하셨다....지난 1월 달 조국사태 때 비판적으로 나왔던 임무영 검사님, 광화문에서 연설하신, 애국심 가진 검사님께서 변호사가 되셨다. 그분 변호사님을 추가 선임하셨다. 또 검찰 출신 정준길 변호사님도 오셨다. 그래서 이분들이 검사님과 상의를 했다.”
이 발언으로 미루어 보건대 담당 검사가 전광훈 씨를 조사하던 중에 전 씨는 검찰 출신 임무영, 정준길 변호사를 추가 선임하였고 검찰의 수사도 ‘호의적으로’ 급선회한 거 같다. 그 중에 특히 “선거운동에 대해서 개념은 분명히 다툼의 소지가 있다”는 담당 검사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검사의 이런 언급은 전 씨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언행이 ‘선거운동’으로 인정되지 않아 ‘무죄’ 판결이 날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한 게 아닌가 싶다. 이처럼 ‘다툼의 여지’를 만들고자 검찰은 전 씨가 각종 집회에서 언급한 총선 출마 예상자들 이름들을 혹시 고의로 삭제한 게 아닐까?
한편 제21대 4.15 총선 당시 정우택 전 의원은 청주시 흥덕구에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57,656표(42.95%)를 얻어 74,900표(55.8%)를 얻은 도종환 후보(더불어민주당)에게 패하였다. 김진태 전 의원은 강원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에 출마해 57,298표(43.93%)를 얻어 66,932표(51.32%)를 얻은 허 영 후보(더불어민주당)에게 자리를 내 줘야 하였다. 또한 법원이 ‘선고 설명 자료’에서 인용한 전광훈 씨의 각종 집회 발언 내용 중에 황교안 대표(자유한국당)도 여러 차례 언급된다. 그도 4.15 총선에서 종로에 출마해 낙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