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한해 내 주요 업무 중 하나는 고발인 조사였다. 고발인 조사만 서른 세 번 넘게 받았는데, 이제는 법원에서 부른다. 평화나무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 중 9건이 기소가 됐고, 그 재판들이 한참 진행 중이다. 그리고 고발인에 대한 증인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피고인 전광훈 씨가 지난 8월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해서 불렀다. 누구나 바쁘고 시간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김용민 이사장은 매일매일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쥴을 소화한다. 그런 사람을 불러다 놓고 전광훈 측 변호인들은 120개가 넘는 질문을 한다. 문제는 그 질문의 대부분이 사건과 직접 연관이 없는 망신주기, 화풀이식 질문이었다는 점이다. 그냥 허허 웃고 변호인들 면 세워주는 자리가 되는 듯 시간을 소비하고 나왔다.
10월부터 시작된 다른 피고인들의 재판에 이제는 평화나무 사무총장을 부른다. 부르면 나가서 재판부의 재판 진행에 최대한 협조하는 게 당연한 시민의 의무일 터. 그런데 또 나가보면 허탈함을 넘어 화가 난다. '한국교회가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안타까움에 씁쓸함이 밀려오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내 월급이 궁금해? 한가로운 변호인
피고인이 된 목사와 그 변호인들은 평화나무 사무총장이 얼마를 받고 일하는 지 참 궁금해 한다. 지난 10월 16일 이남기 목사 재판에서 변호인은 “월급을 한 달에 얼마를 받느냐?”고 질문했다. ‘그게 왜 궁금하지? 내가 월급을 받든 말든, 얼마를 받든, 중요한 건 당신 고객이 범법 행위를 했다는 게 중요한 거야!’라고 생각하며 재판장에게 “제가 답을 해야 하나요?” 물었고, 재판장은 사건과 관계 없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피고인 심하보 목사 변호인은 또 이렇게 물었다. “평화나무에서 봉사직으로 일하나요? 월급을 받고 일하나요?” 나는 “월급을 받지요” 건조하게 대답했다. 의미없는 질문.
그 변호인들은 자신들의 고객을 타겟으로 하여 평화나무가 과도한 고발을 제기하고 그 과정에서 실무책임자인 사무총장이 ‘돈’에 움직여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거라고, 고발의 순수성에 흠집을 내려고 그런 질문을 했을 것이다. 대체로 그런 부류들은 언제나 input이 있어야 output이 있다고 믿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남들도 다 자기들 같은 줄 안다. 불쌍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이런 사건과 무관한 질문은 계속된다. 변호인은 어쨌든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항변하고 싶겠지만, 재판장도 의아해 할 질문 열 개 스무 개가 이어진다. ‘아... 사무실에 할 일이 쌓여있는데...’
실소 터지는 허무맹랑한 방어 논리
내가 법률지식이나 경험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증인심문은, 특히 고발인에 대한 증인심문은 고발을 제기한 내용에 대한 확인과 경찰 조서 진위 여부 그리고 해당 사건과 유관한 중요 사항에 대한 사실확인을 위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피고 변호인들은 사건과 관계없는 쓸데없는 질문들을 나열하고, 뭔가 엉성한 논리를 질문으로 만들어 이것저것 묻는다. 그리고 증인의 진술 중에 뭔가 꼬투리 잡을 만한 게 있는지 노린다. 그러다가 별 시덥지 않은 것을 꼬투리 잡아 집요하게 파고들려고 한다. 헌데 별로 집요하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뭔가 그럴싸해 보이기는 하지만, 방어논리로 쓰기에는 너무 빈약한 쇼맨쉽으로 보이는 그런 논리 전개가 보인다.
이남기 목사 재판 때 변호인이 묻는다. “해당 영상 중에 기독자유통일당 등 특정 단어가 몇 번 등장하는 지 기억하냐고”... “정확히 기억 안 납니다.(그걸 다 기억하면 난 천재다.)” 그러자 이렇게 되묻는다. “아까 고발장에 적시된 피고의 주요 발언내용은 아주 정확히 기억하는데 왜 이건 기억 못해요?” 실소가 나온다.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그래서 고발장에 주요 내용으로 들어간 피고의 발언 중에 핵심 발언은 고발내용을 검토하고 고발장을 작성하고 고발인 조사를 받으면서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서 보고 말했으니 그 두어문장 기억 못할까? 그런데도 변호인은 자신의 억지 주장에 근거해 논리를 확장해 간다. 재판장이 그 변호인들의 증인 심문 과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결국 이남기 목사는 1심에서 벌금 70만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심하보 목사 변호인은 고발장 증거자료로 제출한 영상의 한 장면을 지목하며 말을 막 만들어질문했다. 그리고 그 특정 장면이 왜 피고 심하보 목사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독자유통일당’을 지지한 근거가 되냐고 따져 묻는다. 순간 기억을 되짚었다. ‘지금 저 사람이 뭔 소리를 하는 거지?’ 어쨌든 법정에서의 증인 진술은 엄중한 과정이기에 변호인과 굳이 공방을 벌이는 건 피하면서도, 그런 파편적인 내용 하나를 떼서 항변할 것이 아니라 피고가 왜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핵심을 살펴보시라는 취지로 답했다. 이런저런 질문이 이어지고 간단히 끝날 수 있는 증인심문이 40분 가까이 이어졌다.
이런 변호인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공판 검사들은 간결하고 깔끔하다. 재판 진행에 꼭 필요한,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실 확인만 한다. 그리고 공소 유지에 필요한 사항만 한두 개 더 확인하고 끝이다. 변호인 입장에서야 살인자라도 변호해야 할 입장이기에 뭐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씁쓸함이 남는다.
경찰 취조야? 증인 심문이야?
그래도 꼭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피고 변호인들의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다보면, 이 변호인들이 증인에 대한 심문을 하는 것인지, 피의자에 대한 취조를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 “너희 평화나무 왜 우리 목사님 고발했어? 너희 잘못한거야... 이거 이거 잘못한 거 맞잖아!!” “왜 다른 사람들은 다 놔두고 유독 우리 목사님만 고발했어?” 이런 취지의 발언과 질문이 이어진다. 이럴땐 무미건조하게 있는그대로 사실관계만 이야기한다. ‘당신이 변호하는 그 목사님이 법범행위를 한 것을 알았고, 공명정대한 선거 구현을 위해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를 이행했을 뿐.’ 왜 나만 갖고 그래~~ 이런 류의 호소와 논리전개는 변호인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하여튼 변호인들은 증인으로 출석한 고발인을 마치 피의자 다루듯이 질문을 해댄다. 그들이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그렇게 느껴진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라는 생각으로 그런 것일까?
고발인 입장에서 증인으로 출석했기에 가능한 차분하게 사실관계에 대해서만 짤막하게 답하고 끝내고 싶지만, 충분히 고압적인 변호인의 질문에 때론 당차게 맞받아치기도 해야 했다. 그러면 또 변호인이 꼬리를 내리는 장면도 목격된다.
사건과 관계없는 질문들, 재판부도 관심 없을 질문들, 그저 분풀이성이라고 느껴지는 질문들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증인출석이 예정된 이은재 목사 재판에서도 변호인들은 또 비슷한 질문을 해댈 것이다. 일단 증인으로 고발인을 불러냈으니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그게 피고에게 정말 도움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