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나무 권지연 기자]
평화나무 공명선거감시단에 의해 고발당했던 손현보 목사(세계로 교회)가 크리스천투데이와 인터뷰에서 평화나무가 고발한 설교의 내용에 대해 “지금 김일성의 사상과 생각을 전파하고 한국교회를 어떻게 하면 전복할까 하는 주사파들이 정권을 잡아서 핵심에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며 “이런 사람들을 국회에 보내선 안 된다. 이런 설교가 문제가 돼서 고발이 됐다”고 밝혔다.
크리스천투데이는 7일 손 목사가 평화나무로부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며 손 목사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게재했다. 그러나 평화나무는 손 목사의 발언을 불기소 처분한 부산지방검찰청 서부지청(서영배 검사)의 결정에 불복해 지난달 9일 항고장을 제출한 바 있다.
손현보 목사 설교 어땠나?
손 목사는 크리스천투데이와 인터뷰에서 목사로서의 소신발언을 평화나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문제 삼았다는 듯 주장했다.
‘평화나무의 고발 의도는 뭐였다고 생각하느냐’는 크리스천투데이의 질의에 “당연히 이런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자기들의 뜻을 이루고, 자기들의 세상을 만들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한 것이다.
또 “우리(평화나무에 고발당한 목회자들)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닌,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들이고, 자기 신앙과 양심에 따라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 목사의 설교에는 정말 문제가 없었을까?
손 목사는 지난 2월 23일 세계로교회 주일예배에서 ‘좌파와 우파 그리고 기독교(시 10:4)’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민주당 내에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추종하는 주사파 이념을 가진 국회의원이 많다. 청와대 내 주사파가 침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04. 10. 국가보안법 폐지안에 서명했던 정치인 30명의 명단과 2010. 6. 29. 천안함 폭침 대북규탄결의안 반대 정치인 30명의 명단을 공개하고, “민주당은 중도우파인데 정권 잡기 위해 이 안에 주사파가 들어왔다”고 발언했다.
이뿐 아니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토지공개념, 동일노동· 동일임금, 종교 재편’ 발언 관련 기사를 게시하며 “투표를 통해서 주체사상파 이런 사람들을 국회에 보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손 목사의 해당 발언에 대해 부산지방검찰청 서부지청은 “1시간 27분 분량의 설교 내용 중 주사파가 청와대에 있다거나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천안함 폭침대북규탄 결의안을 반대한 일부 정치인을 거명하거나 주사파는 투표를 통해 국회에 보내면 안 된다고 발언하는 등, 일부 정치인을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한 사실은 인정한다”했다. 해당 발언이 “일부 정치인을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한 것”이라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인정한 것.
그러나 “그와 같은 발언은 전체 설교 중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점, 전체 내용을 분석하면 대부분 좌파와 우파의 기원, 기독교와 좌파의 연관성 등에 대한 일반론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일부 정치적 발언 내용만으로 특정 정당 또는 후보의 당선을 도모하는 목적 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된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검찰의 판단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손 목사가 주장한 ‘좌파와 우파의 기원’ 자체가 왜곡된 사실관계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기독교 교리와도 무관한 주장을 늘어놓으며 특정 정당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좌파의 기원 ‘프랑스혁명’.. 반기독교적?
손 목사는 이날 설교에서 좌파의 기원을 프랑스혁명 자코뱅당으로 꼽고, 이들은 반기독교적 세계관을 지녔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자코뱅당이 반종교(반기독교), 무신론, 이성숭배, 사유재산제도 부정, 시장경제 거부, 이혼ㆍ동성애 장려 등의 정책을 펼쳤다고 했다. 또 이 좌파 사상을 출발점으로 공산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자유주의 신학, 종교다원주의 등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손 목사는 또 “(좌파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무신론을 주장하는데, 기독교인은 이런 좌파가 될 수 없다”며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우파지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면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추종하는 주사파’가 청와대와 여당에 침투했으니 큰일이라는 듯 왜곡된 설교를 이어나갔다.
자코뱅당이 프랑스혁명을 주도하고 노예제 폐지와 토지 무상분배 등으로 마르크스에 의해 공산주의의 사상적 뿌리라고 평가받았을 만큼 좌익을 대표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코뱅당이 기독교 교리와 가치를 비판했다는 것은 대단한 왜곡이다.
조직신학과 종교철학을 전공한 박성철 교수(전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는 “자코뱅이라는 이름 자체가 프랑스에 있는 자코뱅 수도원에서 나온 것”이라며 “단일한 정당이 아니고 3개 파벌이 결합한 정당이다. 그중 가장 극단주의인 몽테뉴파가 기독교를 비판했는데, 이들이 자코뱅당의 전부라고 볼 수 없고 자코뱅당과 몽테뉴파를 동일시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혁명의 대상이 됐던 왕정은 카톨릭을 기반으로 했다”며 “거기서 말하는 기독교는 카톨릭을 말하는 것이고, 카톨릭이 민중을 억압한 귀족과 왕정제도를 지지했기 때문에 왕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카톨릭을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당시 기독교 비판 역시 왕정 체제와 기득권에 대한 비판이었지, 기독교 교리나 사상을 비판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이것을 가지고 기독교를 비판했다고 말해버리면 왜곡이고 유럽의 역사를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흔히 6·8 혁명이 미국을 거치면서 한국에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 이것도 유럽에 대한 몰이해”라며 “한국에서 6.8 혁명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것은 90년대나 되어서였다”라고 일갈했다.
‘기독교는 우파지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좌파가 기독교를 배격한다고 주장하면, 한국에서 인기 있는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같은 종교 사회주의자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는 19세기 독일 신학자로 목사이자, 사회주의자이자 정치가로서 노동자의 권익 문제와 환경 오염 문제 등에 관심을 쏟았다.
박 교수는 “흔히 막스베버의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언급하면서 칼뱅주의의 엄격한 절제, 금욕주의를 기반으로 근대 자본주의가 형성됐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곧 기독교적인 것처럼 얘기한다”며 “그러나 막스베버의 저서 말미에 보면, 칼뱅주의에서 시작했을지 모르나, 이후 자본주의가 스스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더이상 종교적인 노동윤리를 필요로하지 않게 됐다고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는 막스베버가 긍정적으로 보았던 초기 자본주의에 살고 있지도 않다”며 “일부 목사들이 초기 자본주의를 자본주의 전체로 보는데, 자본주의를 모르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목사들이 이런 설교를 하는 이유는 ‘아멘’으로 무비판적 받아들이는 교인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교인들이 깨어나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배덕만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역시 “당시 자코뱅 중에 무신론이나 반기독교적인 사람들이 있었지만, 좌파라서 반기독교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배 교수는 “프랑스혁명 당시 부패한 왕정과 결탁한 기독교(천주교)를 한국 상황에 대입시킨다면, 보수 정권과 결탁해 이득을 누려온 보수 개신교의 상황과 흡사하다”며 “한국에서 개신교는 소수종교에 불과했으나, 해방 이후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을 거쳐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엄청난 특혜를 누렸다. 오히려 기득권과 결탁해 많은 것을 누려온 보수 개신교가 자신들의 기득권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손 목사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왜곡된 주장을 펼치며 이를 근거로 특정 정당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문제의 발언이 전체의 일부에 불과했다는 검찰의 판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손 목사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한 달 반 정도 앞둔 시점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언급하면서 특정 출마 예정자와 당명(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을 직접 거명하기도 했다.
담임 목사의 발언이 교인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가지는지를 생각해 볼 때 손 목사의 설교 발언이 특정 정당 후보자들의 낙선을 도모할 의도가 뚜렷지 않다고 판단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손현보 목사 ‘고난받는 종’처럼 띄운 크리스천투데이
다음세대 교회 떠나는 이유, 좌파때문?
그런데도 크리스천투데이와 인터뷰에 나선 손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가야 하며, 지금 교회 생태계가 다 무너지고 있다”며 “좌파들이 나라를 지배하게 되면 교회가 사라지게 되고 다음 세대 교회가 쇠퇴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나갈 것이 훤하게 보이는데 그냥 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무려 ‘대형교회 목회자면서도 고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치적 소신 발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교회가 쇠퇴하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좌파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상식에 미치지 못하는 목사들의 언행과 자정능력을 상실한 교회 내 여러 윤리적 문제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난 2월 발표한 '2020년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63.9%는 한국 교회를 별로 또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특히 한국 교회가 신뢰받기 위해 개선해야 할 문제로 응답자 25.9%는 '불투명한 재정사용'을 꼽았고, '교회 지도자들의 삶' 22.8%, '타 종교에 대한 태도' 19.9% 등이 뒤를 이었다. 신뢰도 제고를 위한 활동으로는 절반에 가까운 49.8%가 '윤리와 도덕 실천 운동'을 꼽았다.
손 목사는 ‘해당 설교에서 이인영 장관을 비판했는데, 그가 통일부 장관이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유감스럽다”며 “자기가 뭔데 종교 개편을 이야기하나. 이렇게 하는 것 자체는 교만 중에서도 머리 꼭대기에 올라갔다고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최근 이슈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차별금지법이야말로 사람을 차별하는 법이고 동성애 등을 옹호하는 법”이라며 “프랑스혁명이 그 기폭제가 됐다. 프랑스혁명에서 기독교를 적으로 규정하고 기독교의 이름으로 된 모든 도시를 해체하고 그렇지 않은 주민들을 학살하고 모든 기독교의 재산을 압수하고 하나님이 없고 절대 진리가 없다고 인본주의의 시작이 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려는 것은 그 뒤에 사탄의 계략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손 목사의 이같은 인터뷰 내용은 과거 보수 정권과 유착해 특혜를 누렸던 보수 교회들이 더는 과거와 같은 기득권을 누릴 수 없다는 불안함의 발로가 엉뚱하게 표출되고 있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줄 뿐이다.
"우리(평화나무에 고발당한 목회자들)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닌,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손 목사의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평화나무는 목회자의 지위를 이용해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에 대한 표심을 유도하는 발언을 노골적으로 했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해 교인들의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을 한 인물들을 공직선거법에 근거해 고발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