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나무 김준수 기자] 정교분리원칙에 갇힌 한국교회’를 주제로 지난 2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수상한 포럼’이 개최됐다. 이번 포럼은 전희경 의원실과 한국기독문화연구소(소장 김승규) 주최로 진행됐다.
포럼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포럼 알림 기사를 쓴 <크리스천투데이>와 포럼 개최 소식을 알린 GMW연합 네이버 블로그를 살펴봐도 비공개라는 언급은 없었다. 비공개로 진행된다는 소식은 현장에서 공지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내부적인 이유”라고 밝혔다. 한 참가자는 카메라 삼각대를 들고 출입 의사를 밝히자 입장하지 못하도록 제지하기도 했다. 또 발제자 중에서는 <평화나무>를 통해 "초고를 받은 관계자로부터 일부 내용에 대해 수정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음선필 교수(홍익대 법학)를 좌장으로 진행된 포럼은 정영화 교수(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가 ‘미국에서 종교의 정치참여와 정교분리원칙’, 장영수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의 ‘독일에서 종교의 정치암여와 정교분리원칙’, 김학성 교수(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가 ‘한국에서 종교의 정치참여와 정교분리원칙’을 주제로 발제하고, 에릭 G.엔노 교수(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홍완식 교수(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도회근 교수(울산대 법학)가 토론자로 나섰다. 발제자 대부분이 한국헌법학회 주요 임원을 역임한 헌법학자들이다.
연구소는 “한국교회가 잘못 인식하고 있는 정교분리 원칙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이번 포럼을 개최하게 됐다”고 포럼을 개최하는 취지를 밝혔다. 특히 “정교분리가 ‘국가의 종교 관여 금지’를 의미하는데도 불구하고 ‘교회의 정치 참여 금지’라고 확대해석하고, 국가의 정책 및 법령이 성격적 가치관에 반하고 교회를 파괴하는 문제까지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승규 소장은 개회사에서 “많은 개신교인들이 정치에 어느 정도 관여해야 되느냐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다수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라며 “교회가 국가라는 큰 집 속에 있는데, 이 집이 무너지면 교회가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 국가가 평안해야 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위기에 빠진 원인으로 네오마르크스주의를 꼽은 김 소장은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좌파이데올로기가 범람해 학교에서 동성애를 가르치고, 성 해방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것들이 물밑 듯이 좌파이데올로기 속에 들어와 한국교회를 삼키려 하는데, 교회는 가만히 전도하고 기도만 해야 하나”며 “교회가 정당을 만들어 더러운 정치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확실하게 정리해서 나라를 바로하기 위해서라도 기독당이 (국회에) 들어가야 된다”고 강조했다.
김영한 소장(기독교학술원)도 “이념적으로 혼돈되는 이런 시대에 한국사회 제반 문제를 점검하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헌법적인 가치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어가는 이때에 종교와 국가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일은 의미가 있고, 더욱 심화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축사를 전했다.
종교인의 정치참여는 어디까지?
이날 발표자로 나선 헌법학자들은 종교인의 정치참여와 정당 창당을 통한 정치활동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장영수 교수는 정교분리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을 소개하고, 정교분리가 종교 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개념임을 설명했다. 또한 특정 종교가 국교로 인정되거나 정교분리 원칙이 무너져 종교와 정치가 동일시될 경우 타종교를 억압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 교수는 “정치인이 신앙을 갖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공직을 수행할 때는 중립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며 “종교인이 정치활동을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종교지도자가 정치지도자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른 종교가 당장 심각하게 반발할 수 있기 때문에 한계는 분명하게 그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정 종교성을 가진 신도들이 하나의 정당으로 모일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장 교수는 “신도들이 하나의 정당으로 모여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아무리 주요 정당이라도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이라며 “하지만 종교인들끼리도 정치적인 관점이 다양하고, 신도들도 종교적인 신앙으로 뭉친 것이지 정치적 이념으로 뭉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정당으로 모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수많은 종교들이 영적인 세계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간 갈등의 소지는 항상 존재한다”며 “정교분리원칙은 종교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헌법상의 중요한 요체일 뿐만 아니라 종교인들의 정치 참여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계를 그어주는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홍완식 교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봉헌 논란을 언급하며 종교 간의 역지사지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홍 교수는 “만약 불자인 서울 시장이 서울시를 바친다거나 불국으로 만든다는 말을 했다면, 개신교인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겠는가”며 “예수님이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지 정치를 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선교의 수단으로 정치를 생각한다하더라도 뼈아픈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의 정치권력 직접 행사는 위험”
김학성 교수는 종교인이나 종교단체가 자신들의 교리를 실천하기 위해 결사체를 설립하려고 할 때 불허할 근거는 없지만, 종교의 특성과 본질에 비추어 바람직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김 교수는 “종교의 본질은 사랑과 포용일 텐데 현실 정치에 뛰어들 경우 대립과 투쟁의 정치판에서 종교가 본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지 심히 염려된다”며 “종교는 국가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비판하는데 그쳐야지 자파 종교의 보호, 확산, 포교, 선전 등의 목적으로 정치를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가조찬기도회를 대표적인 정교유착의 사례로 설명한 김 교수는 “국가조찬기도회가 본래 취지대로 국가와 대중을 위한 기도회인지 아니면 개신교 지도자들의 명예와 인기를 위한 기도모임은 아닌지, 동시에 참석자들의 정치권 인사와의 줄을 대려고 하는 수단의 성격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유신 시절 일부 진보적인 기독인을 제외하고는 수많은 기독 지도자들은 정교분리 뒤에 숨어 독재와 인권침해에 대해 침묵했다. 민주화 이후 상황이 유리하게 변하자 유독 개신교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며 “정당 창당이라는 직접적인 방식보다는 정치인을 양성하는 간접적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교회는 정치권력의 절대화를 견제해야지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거나 이를 직접 행사하려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회근 교수는 정당 창당이라는 형태보다는 시민단체나 연구소를 통해 사랑과 관용, 희생과 같은 개신교의 가치를 사회에 전파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볼 것을 조언했다.
도 교수는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집회에 많은 개신교 단체들이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흔들며 광장으로 나왔다. 이런 모습들이 개신교에 대한 오해나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사례가 되고 있다”며 “개신교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이고 바람직하게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리적 판단은 교회의 직무다”
이와 달리 정영화 교수는 “신앙을 선포하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언제든지 응답해야하는 것이 교회의 직무”라며 “현실 정치가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윤리적인 판단은 반드시 교회가 해야 될 몫”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여야의 20대 국회의원 공천 기준을 보면 가장 극단적이고 정반대로 소위 이념적 대결에 있는 후보들을 추천했다”며 “지금 국회는 극과 극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한국교회가 과연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올바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선 에릭 G.엔노 교수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나아가서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선포해야만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명확하고 분명한 정의를 토대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다스리실 것”이라며 “현실의 모든 교회와 입법자들의 소명과 의무는 국가를 하나님의 가르침에 불러들여야 한다. 또 전 세계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을 인정할 때까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동성애·낙태 반대 위해 정당 활동 필요 주장
발제가 모두 마무리되자 포럼에 참석한 기독자유당 관계자와 동성애 반대 활동가들은 기다렸다는 듯 “학자들이 현실을 모른다”고 나무라며 질문을 쏟아냈다.
고영일 변호사(기독자유당 대표, 법무법인 추양)는 “(교수님들이) 아스팔트에 나와 본적도 없고 실질적으로 사회단체를 통해 운동을 직접적으로 해본 경험이 생각보다 일천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와인권연구소도 만들어보고, 성시화운동본부와 함께 성적지향 조항을 삭제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정치권 밖에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했다”며 동성애, 낙태, 종교의 자유 등의 이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정당 활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영길 대표(바른군인권연구소)도 “법보다 위에 있는 것이 도덕이고, 도덕보다 위에 있는 것이 종교다. 현실적인 문제는 법의 잣대로 종교를 깔아뭉개고 탄압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며 “이론만 가지고서는 현실에 맞지 않는 동떨어졌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영화 교수는 “이제는 교회의 목소리를 정치라는 문을 통해 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고 직감한다”며 “한국의 정치인들이 개개인은 똑똑한데, 집단으로 보면 머저리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 개신교인들이 중심이 되는 현실 정당이 필요하다. 기독정당이 앞으로 나아갈 중요한 이정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김학성 교수는 “대학교수들이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은 맞다”면서도 “개신교에서는 개신교를 대표하고 많은 교인들이 존경할만한 분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개신교인들이 우격다짐이 아닌 절제된 모습으로 시민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 (개신교인들의) 정당 설립이 가능하고, 개인적으로도 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라고 말했다.
기독자유당으로 대한민국 바꾸자?
포럼을 마치고 연구소 관계자가 참가자에게서 자료집을 회수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이 관계자에게 이유를 묻자 “가편집본이라 회수하게 됐다. 연구소 차원에서 정교분리에 대한 논의를 정리해 추후 (언론에) 공식적으로 배포할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김승규 소장은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요즘 학자들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언급해 개신교 정당 창당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힌 학자들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포럼에 대한 불만은 이튿날인 29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주최로 열린 ‘도올의 이승만에 대한 명예훼손 고발 대회’에서도 계속됐다.
고소장을 들고 강단에 선 고영일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되는 것이다. 법률을 고치고 정책을 고치려면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 대문 밖에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안에 있는 사람을 문을 걸어 잠그면 그만”이라며 “국회 안에 사람이 없으니깐 그동안 정치권에서 교회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제1야당이 있지만 자기 목을 치는 법안들만 만든다. 기독자유당이 만들어지면 대한민국의 영적인 흐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의 흐름, 운명의 흐름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